`문화재를 살리자니 학생들 살 곳이 없고… 학생들을 살게 하자니 문화재가 죽어가고….' 문화재인 서울문묘일원 `양현재'(養賢齋) 보호를 둘러싸고 종로 구청과 성균관대가 갈등을 빚고 있다. 조선시대 교육기관인 성균관(成均館)이 설립된 뒤로 유생들의 기숙공간으로 사용돼온 양현재는 해방 뒤 이 대학에 개설된 동양철학학과 학생들이 옛날 유생들의생활상을 재연하는 기숙공간으로 사용돼왔다. 29일 성균관대에 따르면 종로구청은 올해 1월 이 대학 동양유학학부가 학생들기숙사로 사용하고 있는 양현재에 대해 자진 퇴거명령 조치를 내렸다. 현재 양현재에 머물고 있는 학생들은 48명의 학부생들이다. 구청측은 지난해 12월 사적 제143호인 서울문묘일원에 대한 무단 점유실태에 대한 조사를 벌여 양현재 등 문묘 내 14곳을 임의로 사용하고 있는 동양유학학부와 재단법인 성균관 등 10곳에 자진 퇴거명령 조치를 내렸다. 구청측은 "한달간의 실태조사를 통해 동재(東齋)와 서재(西齋)로 구성된 양현재가 수십년간 학생들 기숙사로 사용되면서 건물 자체가 심하게 훼손됐으며, 화재 등사고에 대비한 안전시설도 없어 퇴거조치를 결정했다"고 밝혔다. 구청측은 이에 따라 지난달 15일까지 양현재 퇴거조치를 요구하는 공문을 발송했으나, 양현재를 운영하고 있는 동양유학학부측의 유예 요청을 받고 이달 3월말까지 퇴거시점을 늦췄다. 퇴거시점이 늦춰지긴 했지만 구청측의 갑작스러운 행정조치에 양현재를 운영하는 동양유학학부측은 학기 중 길거리로 나앉을 학생들 때문에 고민에 빠졌다. 양현재 관리를 맡고 있는 양승권(38) 재감은 "양현재에 거주하는 학생들은 조선시대 유생들의 모습을 재연하며 과거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며 "문화재 관리를 이유로 학생들에게 당장 나가라고 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양현재에 기거하는 학생들은 조선시대 유생들의 모습을 재연한 공간에서 엄격한규율에 따라 생활하고 있으며, 매년 석전대제(釋奠大祭)와 탁본전시(拓本展示)를 개최하고 유생들의 사회풍자극인 `유희'도 공연으로 올리고 있다. 양현재에 살고 있는 한 학생은 "양현재에서 생활하는 학생들은 유교 관련행사와학문연구에 사명감을 갖고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있다"며 "양현재에서 생활하는 자체가 문화재의 명맥을 이어가는 일이자 보호하는 것"이라고 퇴거조치에 반발했다. 하지만 퇴거조치에 대한 동양유학학부측의 반발에도 문화재 보호와 관리를 담당하는 구청측의 입장은 단호하다. 구청 관계자는 "학생들은 양현재를 기숙사로 이용하며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고생각하지만 양현재는 학생들의 무단 사용으로 심하게 훼손돼 있는 상태"라며 "화재에 대한 여러 위험에도 노출돼 있는 만큼 적극적인 관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퇴거명령을 내린 뒤 유예기간을 준만큼 3월말까지 퇴거가 완료될것으로 본다"며 "하지만 그 이후로도 퇴거를 하지 않는 곳에 대해서는 문화재청 등이 강력한 행정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서울=연합뉴스) 양정우기자 ejlov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