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코드'가 새삼 뜨겁다. 한일협정 외교문서 공개에 이어 10·26을 소재로 한 영화개봉과 문화재청의 현판교체 소동 등이 맞물려 박정희에 대한 평가와 시비를 촉발,확대시킨 탓이다. 그 어느 때보다 단결과 통합이 요구되는 시기에 그것도 모두가 새로운 각오와 힘찬 출발을 다짐하는 때에 아무 이득 없는 설전과 논쟁이 횡행하니 요즘 유행어로 정말 '생뚱맞기' 그지없는 일이다. 하긴 박정희 코드가 심심찮게 되살아나는 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언제부턴가 박정희란 이름 석 자는 우리사회의 가장 확실한 리트머스 시험지가 돼버렸다. 스스로 색깔과 성향을 모르겠거든 박정희를 떠올려보면 된다. 그에 대한 평가가 긍정적이면 보수 쪽이고 부정적이면 진보다. 아마 지금의 여야 정치권도 그렇게 갈리는 모양이다. 게다가 경제가 어렵고 세상살이가 힘들수록 박정희 코드는 강력하게 되살아나는 특징이 있다. 따라서 일단 박정희 코드가 되살아나면 그 시기가 어지럽고 흉흉하다는 뜻이다. 세상엔 극단적인 양론(兩論)이 더러 있다. 어느 것이 절대적으로 옳다 그르다 말할 수 없는 논제,박정희에 대한 평가도 그 가운데 하나다. 만일 어떤 조직에서든 갈등을 유발하고 평지풍파를 일으키려면 이 극단적인 양론만 꺼내면 된다. 그럼 아무리 사이가 좋고 정이 돈독했던 사람들일지라도 금방 논쟁에 휩싸이고 싸움으로 이어진다. 소인은 시비를 즐기고 군자는 양론을 경계한다고 했던가. 이간질에 능한 아첨꾼은 언제 어느 때나 시비가 일수 있는 양론의 종류를 많이 알고 있다. 그러니까 '생뚱맞게' 박정희 얘기를 꺼내는 사람은 머리가 아둔하거나 다른 '저의'가 있다고 보면 된다. 특히 배울 만큼 배운 사람이 그럴 경우엔 무조건 후자라고 판단하면 틀림없다. 적어도 분열을 두려워하고 국민통합을 이루려는 사람은 박정희와 같은 첨예한 논쟁거리를 어떻게든 피하려고 노력할 것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우리나라 국내총생산(GDP) 규모가 멕시코를 앞지르며 사상 최초로 세계 10위권에 올랐다는 보도가 있었다. 모처럼 접하는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이를 현 정부의 공으로 말하는 사람은 없다. 실제로 그것은 정부가 아닌 국민들의 공이며 이 나라 국민 모두가 땀흘려 일한 성과다. 박정희 시대라고 다를 것인가? 고전에 '생동지 사당동전(生同志 死當同傳)'이란 말이 있다. 살아서는 뜻을 같이하고 죽어서는 역사의 같은 전기(傳記)에 기록된다는 말이다. 박정희도 개인의 이름이 아닌 한 시대의 전기다. 그 전기 속엔 오늘날 세계 10위 경제대국의 초석을 세운 고귀한 단합과 거룩한 희생정신이 녹아있고,그 주역은 바로 우리 부모와 선배들이다. 배급과 원조로 연명하던 나라가 갑자기 경제대국으로 급성장한 이면에는 60,70년대 이 땅의 산업역군들,먹고 입는 것을 아껴가며 살인적인 격무와 잔업으로 청춘을 보낸 우리 부모와 선배 세대의 값진 희생이 있었다. 그들이 있었기에 박정희가 있고,오늘의 풍요로운 대한민국이 있는 것이다. 박정희란 바로 그 뜨겁고 거룩한 시절을 통칭하는 사회적 역사적 대명사다. 그리고 그 시대의 주역들은 지금도 대부분 살아있다. 다만 나이가 들어 그때처럼 뛰지 못할 뿐이다. 박정희 시대가 끝나고 25년이란 짧지 않은 세월이 지나갔다. 그런데도 박정희 코드가 수시로 되살아나는 건 역설적으로 그 뒤의 국가지도자들이 하나같이 제몫을 다하지 못했거나 혹은 못하고 있다는 반증이다. 박정희 시대를 역사에 어떻게 기록하느냐는 순전히 뒷사람의 손에 달렸다. 우리가 이래서 추락한다면 박정희 시대는 그야말로 한국역사에서 제일 위대했던 시대로 기록될 것이다. 그러나 세대를 이어가며 계속해서 발전과 번영을 구가하면 모든 지도자의 이름이 빛날 것이고,아울러 모든 한국인이 대를 이어 위대해질 것이다. 달리는 자는 뒤를 돌아보지 않는다. 과거를 자꾸 되씹는다는 건 역사가 퇴보하고 있다는 가장 뚜렷한 증거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