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봉규 한국산업기술재단 사무총장 bongkp@kotef.or.kr > 보잘 것 없는 환경에서 태어나 글도 깨우치지 못했던 칭기즈칸이 어떻게 몽고벌판을 통일하고 역사상 가장 광대한 영토를 지배한 제국을 세울 수 있었을까? 칭기즈칸의 여러 능력 중에서도 특별히 전 부족,전 국민의 역량을 한곳으로 결집시키고자 했던 노력에 주목하고자 한다. 그는 한 사람의 꿈은 꿈으로 끝날 수 있지만 만인(萬人)이 꿈을 꾸면 그 꿈이 현실이 될 수 있다는 신념으로 전체를 이끌어 갔다. 지도자의 비전과 철학의 중요성이 돋보이는 부분이다. 그러나 고상한 철학에 공감하면서도 자신에게 돌아오는 실리가 없으면 쉽게 움직이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그는 '분배의 정의'를 실천함으로써 이 문제를 해결하고 전 부족을 하나로 묶을 수 있었다. 전통적으로 몽고 벌판에서의 전리품 분배 방식은 '먼저 차지하는 사람이 임자'인 시스템이었다. 적진에 진입한 최일선 부대부터 보이는 대로 약탈하면 그것은 바로 그의 소유가 됐다. 그러나 칭기즈칸은 전리품에 대한 개인의 약탈을 금지하고 이를 모두 한 곳에 모아 전투에 기여한 공헌에 따라 골고루 나눠주는 방식을 도입했다. 일종의 성과급제도다. 물론 목숨 걸고 보다 적극적으로 싸운 사람들에게 더 큰 몫이 돌아갔겠지만,후방에서 양과 말을 돌보며 승리를 기원하던 여자나 노인들에게도 몫이 배당됐다. 문제는 최전선에서 피 흘린 전사들의 몫은 필연 과거보다 작아졌을 터인데 그들이 어떻게 새로운 제도를 수용했겠는가 하는 점이다. 칭기즈칸의 권위나 힘만으로 가능했다고는 생각하기 어렵다. 결국 전사들도 자신들의 작은 양보가 결국에는 더 큰 이익이 돼 돌아온다는 것을 알고 기꺼이 실천할 의지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으리라. 다행스럽게도 우리 사회는 칭기즈칸이 공권력을 동원해 포획물을 배분하던 시대와는 달리 시장(市場)이란 제도가 있어 생산활동에 기여한 만큼 그 몫을 배분하고 있다. 다만 없는 자가 양보하기는 어려운 법이다. 더 가질 수 있는 사람의 작은 양보가 선행돼야 사회통합의 시너지효과를 낼 수 있다. 냉철한 합리성을 추구하는 시장원리와 덜 가진 자를 배려하는 감성의 조화가 필요한 때다. 아무리 유능한 20%가 세상을 먹여 살리고 사회를 이끌어 간다고 해도 나머지 80%가 방관자가 되거나 유능한 자의 뒷다리를 잡는다면 사회 발전은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