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관계가 살얼음판을 걷던 문민정부 말기에 기업인이 대통령 특사 자격으로 극비리에 방북했다는 진술이 나와 관심을 끌고 있다. 국가안전기획부(현 국가정보원) 예산을 횡령한 혐의로 기소된 권영해 전 안기부장은 22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1부(재판장 황찬현) 심리의 첫 공판에서 "장치혁고합그룹 전 회장이 97년 5월15일부터 닷새동안 대통령 특사 자격으로 극비리에 방북, 북쪽 반응과 정보를 수집하고 돌아와 대통령을 면담했다"고 말했다. 당시 대우그룹 김우중 회장은 97년 추석 연휴에 극비리 방북, 북한측 고위 관계자들을 만나고 돌아온 뒤 김영삼 대통령과 독대해 항간에 김 회장이 정부 특사 자격으로 방북했다는 주장이 제기됐지만 정부는 이를 부인했다. 권씨는 "이북 출신인 장 전 회장이 전경련 남북경협위원장을 맡는 등 활발하게대북활동을 해 감사 인사로 돈을 건넸고, 당시 그런 대북활동 사례비는 관행이었다"고 주장했다. 권씨는 "사례비라고 말하면 장 회장이 받지 않을 것 같아 돈이라는 사실을 알리지 않고 사람을 시켜 차 트렁크에 실었다"며 "나중에 동생을 통해 돌려준 사실은 알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권씨는 안기부 예산의 집행, 감독에 대한 검찰 신문에 "10억원은 부장이 관할하는 특별사업비였지만 실질적으로 안기부 예산 집행을 감독할 수 있는 체제가 없었다"고 말했다. 권씨는 안기부장으로 재직하던 97년 10월초 특별사업비로 배정된 안기부자금 10억원을 동생 영호씨가 운영하다 부실화된 K식품 인수비 명목으로 고합그룹 장치혁회장에게 제공, 결과적으로 그 자금이 영호씨에게 건네지도록 한 혐의로 기소됐다. 검찰은 인수비 명목으로 받았다는 장 전 회장과 권씨의 진술이 엇갈림에 따라정 전 회장을 증인으로 채택했다. 다음 공판은 내년 1월 19일 오후 3시. (서울=연합뉴스) 이광철 기자 minor@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