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의 2004년은 의회권력을 개혁세력인 열린우리당에 내주면서 제2당으로 전락하는가 하면, 뉴라이트 운동에 의해 보수 대표정당의 위상마저 도전받는 시련과 고난의 한해로 상징된다. 이 과정에서 한나라당에 안겨진 과제는 체질개선과 이념정립 등 새로운 정치환경에 적응할 수 있는 `변화와 개혁'이었다. 올초만 해도 한나라당은 야당임에도 불구하고 정국을 쥐락펴락하면서 마치 집권여당인 듯 사고하고 행동했다. 국회 모든 상임위에서 단독으로 과반을 차지하는 이른바 `절대과반'이라는 수적우위와 열린우리당 창당으로 인한 민주당의 반발 등 정치권의 우호적인 환경은 한나라당이 닥쳐올 위기에 둔감하도록 만든 `독'과도 같은 악재였다. 한나라당은 자신들이 보유한 막강한 권한과 자산을 정치개혁과 당개혁에 쏟아붓지 못하고 현상유지와 자기방어에 사용하는 데 급급, 여론의 저항과 비판을 `적립'하고 있었다. 대표적인 사례는 2월9일 불법정치자금수수로 구속된 서청원(徐淸源) 전 대표에대한 석방동의안의 본회의 가결을 `감행'한 자충수였다. 가결 직후 국민여론은 한나라당에 대해 "비리정치인 비호당", 국회에 대해선 "비리정치인 방탄국회'라는 비난을 쏟아부었다. 한나라당의 `오만'은 3월12일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탄핵안 가결에서 정점으로치달았다. 한나라당은 민주당, 자민련과 연대해 탄핵안 처리를 밀어붙여, 재적 의원(271명)의 3분의 2가 넘는 193표의 찬성으로 노 대통령의 직무를 정지시켰다. 그렇지만 이같은 `힘의 정치'는 여론의 거센 저항에 부딪히면서 촛불시위 등 탄핵반대운동을 촉발시켜 당을 절체절명의 위기국면으로 몰아넣었다. 더욱이 검찰의 수사를 통해 `차떼기'로 상징되는 한나라당의 불법대선자금 모금및 사용 실태가 적나라하게 드러나면서 한나라당은 존립 자체가 불투명해지는 등 창당 이후 최대의 고비를 맞기도 했다. 결국 한나라당은 탄핵을 주도한 책임을 물어 최병렬(崔秉烈) 대표를 곡절 끝에하차시키고 총선을 20여일 앞둔 3월23일 임시전당대회에서 박근혜(朴槿惠) 의원을 51.8%의 압도적 지지로 새 대표로 선출, `소방수'로 투입하는 정치도박에 올인했다. 비상체제를 선언한 박 대표는 곧바로 과감한 당개혁과 이미지 개선에 착수했다. 박 대표는 대표 당선 후 첫 행보로 종교계를 방문, 고해성사와 108배 등을 하며 과거 잘못과 부패에 대해 반성하는 등 최대한 몸을 낮췄다. 또 박 대표는 국민에게 `재벌당', `정경유착당'의 부정적 이미지를 고착시킨 `호화당사'를 버리고 여의도 광장 옆에 컨테이너 및 천막으로 당사를 짓고 풍찬노숙하며 `고난의 행군'에 나섰다. 천안연수원의 국가헌납이 이뤄진 것도 이때다. 정치인의 불법.비리행위를 막기위해 국회의원 재산신탁을 공약하겠다는 다짐도 나왔다. 당 안팎에선 `이벤트 정치', `이미지 정치'라는 비판이 제기되기도 했으나 박대표의 당개혁 작업은 계속 됐고, 비상시국이었던 만큼 당내 반발도 크지는 않았다. 한나라당의 변화는 총선후보 `물갈이'에서도 시도됐다. 16대 의원 가운데 60명이 불출마 또는 공천탈락해 40.5%(16대 물갈이율 26.3%)의 물갈이가 이뤄졌고, 17대총선 비례대표 후보 43명은 전원 신인으로 공천했다. 총선 결과 한나라당은 전체 299석 가운데 121석을 차지, 열린우리당에 제1당을내주기는 했지만 개헌저지선(100석)을 확보하는 데는 성공했다. 총선 후에도 한나라당은 당을 개혁하기 위한 작업을 계속해 염창동에 당사를 새로 마련하고 `공룡' 사무처도 3분의 1 수준으로 과감히 슬림화했다. 7.19 전당대회에서 박근혜 대표 제2기 체제가 출범한 뒤에도 당 선진화 작업 등 당개혁 작업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이같은 외적 변화시도에도 불구하고 한나라당은 정국대응에 있어선 과거야당의 구태를 과감히 벗어내지는 못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17대 국회 개원협상에서 상임위원장 자리를 놓고 여당과 기싸움을 벌이느라국회를 한 달여 공전시켰고, 이해찬(李海瓚) 총리의 한나라당 폄하발언을 빌미로 2주간 정기국회를 올스톱시키는 등 구태를 벗지 못했다. 또 국회 활동에서도 이념.색깔공방과 무책임한 폭로에 여전히 의지하려는 모습을 보였다는 지적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특히 행정수도이전에 대해선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이 나올 때까지 변변한 당론조차 정하지 못한 채 여론의 눈치만 살피며 우왕좌왕해 `참다운 변화'에는 아직이르지 못했다는 비판적 평가도 제기되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김병수 기자 bingsoo@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