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계 대형펀드가 지배구조개선을 명분으로 인수·합병(M&A) 가능성을 제기한 뒤 주가가 급등하자 전량 매각,막대한 시세차익을 거둔 사실이 밝혀져 '주가 조작' 논란이 일고 있다. 영국계 헤르메스자산운용은 8일 금융감독원 공시를 통해 삼성물산 보유 주식 7백77만2천주(지분율 5%) 전량을 지난 3일 매각했다고 밝혔다. 헤르메스는 '투자이익 실현'을 그 이유로 설명했다. 매각 평균 단가는 1만4천6백원으로 지난 3월 초 매입 단가가 1만2천1백원인 점을 감안하면 9개월여만에 1백94억원의 차익을 낸 셈이다. 증권업계는 헤르메스가 삼성물산에 지배구조 개선을 줄곧 요구해온 펀드였다는 점에서 이번 차익실현을 심각하게 보고 있다. 겉으론 기업가치 개선을 내세웠지만 경영권 위협을 무기로 주가를 띄운 뒤 차익을 노리는 투기펀드의 전형적 수법이란 지적이다. 업계 관계자는 특히 "매각 직전 국내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를 통해 경영권 위협 가능성을 거론한 뒤 주식을 팔아치운 것은 명백한 주가조작"이라고 문제를 제기했다. 헤르메스는 지난달 말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지배구조 개선을 위해 M&A를 시도하는 펀드를 적극 지원할 것"이라고 밝혀 경영권 분쟁가능성을 시사해 삼성물산 주가를 급등시켰다. 그러나 정작 주가가 급등한 사이 보유지분을 한꺼번에 처분했으며 이 과정에서 주가가 급락해 추격매수에 나선 국내 투자자들만 큰 손해를 보게 됐다. 또 경영권 방어를 위해 자사주 4백만주를 매입키로 한 삼성물산에도 적지 않은 부담을 안겨줬다. 업계는 헤르메스가 현대산업개발 한솔제지 등 지배구조가 취약한 다른 기업에 대해서도 5% 이상의 지분을 갖고 있어 유사한 일이 벌어질 개연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유럽계 소버린자산운용도 마찬가지 경우란 시각이 강하다. 지배구조 개선을 명분으로 내세우고 있지만 결국 주가가 목표 수준에 도달하면 차익을 실현하고 빠져나갈 공산이 크다는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관측이다. 김형태 증권연구원 부원장은 "일부 외국펀드들이 법망을 교묘히 피해가며 국내 증시를 투기장으로 만들고있다"며 "헤지펀드 등 투기성향이 강한 외국인이 늘고 있어 정부차원의 대응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정종태 기자 jtch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