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인생에 관한 테오 앙겔로풀로스 감독의 영화 '비키퍼' '영원과 하루'가 서울 신문로 시네큐브에서 잇따라 개봉된다.




앙겔로풀로스 감독은 그리스의 비극적인 현대사와 인생의 의미를 독창적인 시각으로 포착해 온 현대 영화계의 거장.클로즈업과 빠른 편집으로 대변되는 할리우드 영화의 연출기법과는 반대로 롱테이크(길게 찍기)와 극단적인 롱샷(멀리 찍기),느린 카메라 워크를 통해 간결하면서도 서정적인 영상을 구현해 왔다.


지난달 27일 개봉돼 상영되고 있는 '비키퍼'는 '침묵 3부작' 중 '사랑의 침묵'이란 부제가 붙은 영화다.


감독이 역사적 관심사에서 개인적인 관심사로 전환한 첫 작품으로 '해바라기''8과 1/2' 등으로 국내 팬들에게 친숙한 이탈리아의 마르첼로 마스트로얀니가 주연을 맡았다.


'비키퍼'는 차에 꿀벌통을 싣고 떠도는 꿀벌치기 노인 스피로(마스트로얀니)가 우연히 한 소녀를 만난 뒤 그녀에게 깊이 빠져드는 과정을 보여준다.


소녀의 유혹에 대한 스피로의 거부감은 질투로 바뀌고 다시 욕정으로 변한다.


그러나 현재의 욕망에 이끌리는 소녀와 추억에 집착하는 스피로가 응시하는 곳은 전혀 다르다.


흩어지는 가족,비에 젖은 길과 낡은 호텔방 등은 현대인의 고독감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꽃(소녀)과 벌(스피로)이 벌이는 유혹과 거부의 정사신은 영화사의 명장면으로 꼽힌다.


오는 12일 개봉되는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 '영원과 하루'도 스피로와 비슷한 연배의 노시인 알렉산더가 죽음을 앞두고 알바니아 난민 소년과 고단한 하루를 보내는 내용이다.


사별한 아내의 서신이 알렉산더를 회한으로 이끌고 낯선 소년의 고난에 기꺼이 뛰어드는 촉매제로 작용한다.


아내와 함께했던 과거의 아름다운 하루가 현재의 초라한 하루와 겹쳐지며 영원으로 승화한다.


현실의 시인과 소년에서부터 시작해 과거의 해변파티 속 시인과 아내를 거쳐 다시 현실로 돌아오는 긴 장면이 느린 카메라에 의해 커트 없이 연출됐다.


두 작품의 주인공은 모두 사랑으로 구원받지 못한다.


세월의 간극을 뛰어넘고픈 스피로의 욕망에는 '침묵'의 답변만이 들려 왔고 불멸의 시어 찾기에 골몰해 아내와 함께하는 시간을 갖지 못했던 알렉산더는 추억 속에서만 사랑을 발견할 뿐이다.


진정한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해 방황하는 스피로와 알렉산더는 감독 자신을 연상시키는 캐릭터다.


두 작품에 흐르는 음악감독 엘레니 카라인드루의 강렬한 멜로디가 관객의 뇌리에 깊이 새겨진다.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