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희 대한항공 사장은 1960년대 후반 공군 정비병으로 군 복무를 마쳤다.

대학을 졸업하면 대한항공에 입사하기로 마음먹고 있었던 그는 공군 근무를 일종의 "경력 관리"로 생각했다.

유관홍 현대중공업 사장은 지난해에야 "내집 마련"에 성공(?)했다.

입사한지 딱 30년만이었다.

그동안 한번도 현장을 떠나지 않았던 그는 회사 사택에서계속 살았고 자녀 결혼도 그곳에서 시켰다.

황창규 삼성전자 반도체총괄 사장은 1989년 입사할 때 샀던 강남의 40평짜리 낡은 아파트를 아직 떠나지 않고 있다.

국내 최고 수준의 연봉을 받는 그는 "가족들과 보다 가까이 있기 위해"라고 설명했다.

대기업 최고경영자(CEO)들의 화려한 이력과 공식 직함보다 더 윤기나는 것은 그들의 일상이다.

만나야 할 사람들이 많고 가야 할 모임과 회의들도 적지 않기에 그들의 수첩은 늘 빼곡하다.

SK㈜ 신헌철 사장은 하루 평균 10개가 넘는 일정을 소화하면서 주말엔 교회에 가고 남산 순환도로를 달린다.

하느님 다음으로 가장 많은 인간형을 '창조'했다는 셰익스피어가 '왕관을 쓴 머리는 늘 불안하다'고 갈파했던 것처럼 CEO라는 자리는 생래적으로 고독하고 불안하다.

1981년 대우조선에 입사해 2001년 7월 CEO 임명을 받은 정성립 사장은 "겁이 덜컥 나 한동안 밤잠을 설쳤다"고 말했다.

CEO들의 생각을 사로잡고 있는 것은 오늘이 아니라 내일이다.

어제까지 이뤄놓은 부와 성취가 아니라 앞날을 위한 준비와 도전이다.

그들은 이 때문에 '기회는 준비된 마음을 선호한다'(파스퇴르)는 19세기 경구를 들려준다.

분명 젊은이들은 모든 것이 빛의 속도로 이뤄진다고 믿는 신경제·디지털 경제의 한가운데에 서 있다.

그러나 오늘날 CEO의 찬연한 덕목이 20년 뒤에 빛을 잃어버릴지라도 땀과 열정의 가치까지 퇴색하지는 않는다.

급변하는 시류와 세태가 사람들을 조급하게 만들지라도 성공과 실패를 가르는 열쇠는 언제나 준비와 도전이라고 당대의 CEO들은 강조하고 있다.

그들은 오늘 이 아침에도 "아직 나의 꿈은 이뤄지지 않았다"고 얘기한다.

조일훈 기자 ji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