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년째 표류하던 용산 미군기지 이전 문제가 22일(한국시간 23일)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제10차 미래한미동맹정책구상(FOTA) 회의에서 완전히 타결됐다.

이에 따라 양측은 기지이전을 위한 법적체계로 1990년 체결된 기본합의각서(MOA)및 양해각서(MOU)를 대체할 포괄협정(UA)과 이행합의서(IA)를 이번에 작성함으로써126년간 외국군이 주둔해온 서울 한복판의 땅을 시민품으로 되돌려주려는 노력이 결실을 거두게 됐다.

1882년 임오군란 이후 주요 격변기 마다 외국군이 주둔해 민족수난사를 그대로간직했던 용산기지 이전문제는 1987년 당시 노태우 대통령 후보가 이전을 선거공약으로 제시한 것을 계기로 공론화됐다.

이후 양국은 1990년 용산기지를 평택으로 완전히 옮기기로 합의하고, 1991년 미8군 골프장을 폐쇄하는 등 합의이행을 위해 준비했으나 미국측의 과도한 이전비용요구 때문에 1993년부터 이전 일정이 중단됐다.

용산기지 이전문제는 이후 10년간 잠복됐다 2002년 12월 워싱턴에서 열린 제34차 한미연례안보협의회(SCM)에서 용산기지 이전을 포함한 한미동맹 현안을 논의키로합의하면서 또 다시 세인의 관심을 끌었다.

특히 한미 양국 정상들이 지난해 5월 15일 조속한 시일 내에 용산기지를 옮기기로 전격 합의한 것을 계기로 양측간 후속협상이 급물살을 타면서 새로운 전기를 맞게됐다.

한국측은 1990년 체결된 MOU 및 MOA가 불평등 조약이라는 국민적 비난을 감안해우리에게 일방적으로 불리한 독소조항들을 없애거나 고치는 노력을 경주해 지난해 10월 5차 FOTA 회의에서 상당수 쟁점들을 해소, 새로운 UA 및 IA 작성이 임박한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양측은 잔류 미군 1천여명과 이들의 가족, 군무원 등 6천∼7천명을 위한숙소, 병원, 학교 등을 건설하는 데 최소 28만평이 필요하다고 고집한 데 반해 한국은 17만평 이상은 할애할 수 없다고 버텨 더 이상 협상이 진전되지는 못했다.

설상가상으로 언론과 시민단체들이 토지규모와 시설설계 등과 관련한 합의안의일부는 오히려 과거보다 개악됐다는 의혹을 제기하면서 협상팀이 최대 시련기를 맞았다.

외무부 일각에서도 협상내용의 불합리성을 지적, 협상팀은 지난해 11월 청와대민정수석실로부터 `회의형식을 띤 조사'를 받기도 했다.

협상팀은 일부 문구에 대한 수정만 하면 독소조항 개정 및 폐지 작업을 완료할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거대한 난관에 봉착했던 것이다.

이후 협상팀은 금년 1, 2월 이뤄진 6, 7차 FOTA 회의에서 그동안 사실상 합의된비용관련 조항들을 놓고 "문제가 있는지 다시 한번 따져보자"고 제의해 미국측의 반발을 촉발하면서 협상이 교착상태에 빠지는 게 아니냐는 우려를 낳기도 했다.

금년 3월 8차 회의에서는 미국측이 용산기지 일대의 주한미군용 주택 1천200채를 오산.평택 기지안에 무상으로 건립해줄 것을 요구, 협상이 결렬됐다.

지난달 6일에는 리처드 롤리스 미측 수석대표가 "2005년 12월 말까지 주한미군1만2천500명을 감축한다"는 계획을 제시, 기지이전 부지규모 문제가 협상의 새로운걸림돌로 부상했다.

이틀 뒤 열린 9차 FOTA회의에서 미측은 당초 잔류 예정이었던 연합사와 유엔사가 옮겨가는 만큼 대체부지로 최소 360만평은 확보돼야 한다고 주장한 데 반해 우리측은 주한미군 감축을 감안하면 330만평 이상을 제공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해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

이후 한국측 `협상 지휘봉'을 넘겨받은 안광찬 신임 국방부 정책실장은 과거 연합사 부참모장 재직 시절부터 쌓아온 다양한 대미 채널을 동원해 막전.막후 협상을벌여 용산기지 이전부지를 349만평으로 합의하는 등 미합의 쟁점들을 해소함으로써이번에 용산기지 이전협상을 마무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워싱턴=연합뉴스) 황대일 기자 hadi@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