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에너지기업 엔론이 회계부정 스캔들로 파산하기 직전에 이 회사 간부들간 오고 갔던 e-메일은 정치인과 기업간의 유착관계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엔론사 경영진들간에 지난 2000-2001년 사이에 회람된 e-메일은 유력 정치인에게 대가성 있는 헌금을 제공하는 문제가 상세하게 논의된 것으로 드러나 하원 윤리위원회가 이를 조사하는 등 파문이 확산되고 있다.

특히 이번 조사에서 하원의 2인자인 톰 딜레이 공화당 원내총무가 엔론측으로부터 대가성 있는 정치자금을 받은 것으로 밝혀져 파산 위기에 몰려 있던 엔론이 정치권에 대해 광범위하게 로비를 벌였음을 시사하고 있다.

이들 e-메일은 당시 엔론사 간부들이 로비 자금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 과정을 보여주고 있으며 아울러 정치인들이 기업들에 정치자금을 노골적으로 요구한 사실도 들어 있다.

초당파 단체로 정치자금에 대한 감시활동을 벌이고 있는 `응답하는 정치'의 래리 노블 사무총장은 "이들 e-메일은 정경유착의 검은 장막을 들쳐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유력 정치인인 딜레이 총무는 엔론 뿐 아니라 웨스터 에너지로부터도 법률적인 지원을 대가로 정치자금을 받아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딜레이 총무측은 대가성 있는 자금을 받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이번에 드러난 e-메일은 돈의 성격을 명백하게 드러내고 있어 그 같은 부인이 설득력을 얻지 못하고 있다.

정치 윤리 감시 단체인 `주디칼 워치'의 톰 피튼 회장은 "이들 e-메일은 밀실에서 어떤 거래가 이뤄졌는지 보여주고 있다. 공화당 뿐 아니라 민주당 의원들도 일견기술적으로는 합법적으로 보이지만 실질적으로는 검은 돈을 거래하는 데 관여했다"고 말했다.

지난 2001년 5월 31일에 엔론 로비스트 릭 샤피로와 린다 로버트슨 간에 주고받은 e-메일은 조지 부시 대통령과 딕 체니 부통령을 위한 만찬을 위해 공화당의 한 외곽 단체에 5만달러를 기부하는 방안을 논의한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엔론 간부들이 당시 케네스 레이 엔론 회장에게 보낸 e-메일은 공화당 단체의 당초 요구액은 5만달러였지만 결국 이 행사를 위해 소위 `소프트 머니' 명목으로 25만달러를 기부했다고 밝혔다.

소프트 머니는 기업이나 개인이 정당에 기부하는 돈으로 지난 2002년 제정된 새 정치자금법은 이를 엄격하게 규제하고 있다. 새 정치자금법은 대기업이나 노동조합등 이익집단이 그동안 무제한으로 기부할 수 있었던 소프트 머니를 연간 1만달러 이하로 제한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 정당들은 외곽단체를 이용해 소프트 머니를 거둬들이고 있다.

선거감시 단체인 `유세 법률센터'의 트레버 포터 회장은 "엔론의 e-메일은 기업의 운명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법률을 제정할 권한을 갖고 있는 의원들이 기업에 대해 돈을 요구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고 말했다.

(워싱턴 AP=연합뉴스) songbs@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