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정부는 가능한 한 빨리 이라크에서 철군하겠다는 입장을 밝히는 등 이라크에서 일하다 납치된 자국민 안젤로 델라 크루즈(46)를 살리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 가운데 납치세력이 밝힌 살해 시한(12일 밤)은 이미 지나버렸다.

라파엘 세기스 필리핀 외무차관은 13일 아침 알-자지라 TV에 출연, 모든 필리핀인들과 그의 가족들을 대신해 납치세력들에게 자비와 동정을 호소하면서 가능한 한빨리 이라크에 주둔하고 있는 자국 군대를 철수하겠다고 밝혔다.

세기스 차관은 그러나 이 TV 뉴스 앵커가 언제 철군이 이뤄질 것인지를 묻자 "필리핀 정부의 의지에 따라 철군이 이뤄질 것"이라며 구체적인 언급을 회피, 필리핀정부가 앞서 밝힌 8월20일 이전에 철군이 이뤄질지는 미지수다.

크루즈 구출을 위해 바그다드에 와 있는 세기스 차관은 또 이 TV에서 "이슬람은평화와 동정의 종교"라면서 "나는 이슬람신자들인 당신들과 당신들의 따뜻한 가슴을향해 안젤로 델라 크루즈의 석방을 호소한다"고 말했다.

파트리샤 산토 토마스 필리핀 노동부장관도 이날 크루즈의 부인과 형을 대동하고 두바이를 방문, 납치세력에게 인질 석방을 호소했다.

토마스 장관은 "지금은 우리 모두 희망과 낙관을 버리지 말아야 할 때"라면서 "크루즈의 가족들도 고무돼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납치세력은 12일 알-자지라 TV에 보낸 한 비디오 테이프를 통해 필리핀정부에게 기회를 더 주기 위해 쿠르즈 살해 시한을 월요일(12일) 밤까지 24시간 연장한다"고 밝혔다.

크루즈는 이날 공개된 비디오테이프에서 거듭 글로리아 마카파갈 아로요 필리핀대통령에게 8월20일 이전에 필리핀군을 철수할 것을 호소하고 그렇지 않으면 자신이살해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비디오에서 크루즈는 5월 살해된 미국인 인질 닉 버그와 지난달 살해된 한국인 김선일씨와 마찬가지로 오렌지색 수의를 입고 두건을 쓴 납치범들에 둘러싸여 앉아 있었다.

자신들을 할레드 이븐 알-왈리드 여단(이라크 이슬람군)이라고 밝힌 납치세력은이 비디오를 통해 밝힌 성명에서 쿠르즈가 아직 살아 있지만 필리핀 정부가 군 철수를 결정하지 않을 경우 그를 살해하기 위해 다른 장소로 옮겼다고 밝혔다.

이들은 인질 살해 시한 연장에 대해 "우리는 인질을 살려줄 우리의 의사를 전세계에 알리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했다"면서 쿠르즈가 자신이 살해될 경우 시신을 필리핀으로 옮겨줄 것을 당부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아로요 대통령은 이들의 철군 요구를 거절했으며 51명의 평화유지군은예정대로 8월20일까지 임무를 마친 뒤 귀국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고 이라크 임시정부측도 필리핀 정부가 납치범들에게 굴복하지 말 것을 당부하며 납치범들을 자극해쿠르즈가 석방됐을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

가지 알 야와르 이라크 임시정부 대통령은 이날 "이번이 납치범이자 범죄 집단인 테러리스트들에게는 마지막 기회이며 차후 이들에게 돌아갈 것은 칼이다"라며 "우리는 이들을 근절시킬 것"이라고 호언했다.

(바그다드 AP.AFP=연합뉴스) kjw@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