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후반 야간학부 학생들이 주야간 차별철폐를 요구하며 데모를 했다. 야간 졸업자는 취업이나 결혼할 때 차별을 받으니 성적표 졸업증명 등에 야간 출신임을 보여주는 일체의 기록을 없애달라는 것이다. 또한 그들의 과거를 추적할 수 없게 학번(學番)자체를 주간 학생들과 통합하라는 것이다. 학교당국이 학사행정도 허물고 그들을 위장(僞裝)시킬 것을 요구한다. 그러나 당시는 독재정부를 무너뜨린 학생운동권의 위세를 누구도 꺾지 못하던 시대이다. 최후로 학생대표에게 제안했다. "주간학부의 동의를 받아 오라. 그들이 입학수능점수가 50점이나 낮은 야간과 학번 통합하자고 하겠는가." 놀랍게도 주간학부는 자청해서 동의해주었다. 당시 NL(민족해방)계 PD(민중민주)계로 대치하던 주간학생회 대표가 그들 세력권에 야간학부 학생회를 영입코자 쌍수로 지지한 것이다. 주간의 강모가 xx1번이면 야간 고모는 xx2번 다음 주간 권모 xx3번 식으로 주야간을 완전히 섞는 일이 정말 이뤄졌다. 취업철이 되어 주간 학생들이 출신을 의심받고 좌절하는 사례가 속출하자 이제는 이들이 학번의 분리를 요구해왔다. 이들은 요구의 정당성을 주장했지만 역시 같은 제안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야간의 동의를 받아 오라. 어떻게 얻은 권리인데 그들이 돌려주겠는가." 국회와 대법원을 포함해 85개 국가기관을 옮기는 사실상 천도계획이 하루하루 확정돼 가고 있다. 모든 것이 대통령 선거공약인 행정수도 이전을 한나라당 의원들이 충청권 표를 얻겠다고 동의해준 데서 시작됐다. 이 국민대표들이 국가사회의 미래나 국민의사를 염두에 두고 동의했겠는가. 또 부정 병역 기득권 시비가 들끓던 대선 때 행정수도 이전 공약 때문에 노 대통령을 찍은 수도권 투표자가 얼마나 되겠는가. 그러나 수도권시민들이 무심코 버린 권리를 이제 정신차린다고 현 정권이 돌려줄 것 같지 않다. 다음 낙타에게 천막을 몽땅 내준 "몽고인 이야기"가 재현됐다. 처음 주인께 코만 녹이겠다는 허락을 얻은 낙타는 주인이 조는 사이 머리 전부를 천막 속으로 디밀었다. 곧 앞발 뒷발까지 밀어 넣고는 "나는 네가 허락해서 들어왔다. 천막이 좁으니 이제 너는 나가라"고 몽고인을 걷어찼다. 졸지에 천도계획을 얻어맞은 수도권 시민은 바로 이 몽고인이다. 4조~6조원이면 된다던 행정수도 이전공약은 50조~1백조가 될지 모를 대 역사(役事)로 표변했다. 수도이전지의 최종 결정 뒤 후유증이 걱정인지 20개의 위성도시 건설계획이 디시 나왔고 또 지방균형발전의 이름아래 3백개 공공기관을 서울에서 소개(疏開)시키겠다고 한다. 이제 허리까지 들어온 낙타는 향후 국민과 기업에게 또 어떤 분부를 내릴지 알 수 없다. 수도이전의 득실에 대해서는 누구나 강변할 수 있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사업도 그 주체와 의도가 의심받게 되면 실패함을 역사는 수없이 보여주었다. 현 수도이전 추진세력은 먼저 그들의 도덕성이 의심받지 않는지 돌아봐야 한다. 부지부식간에 국민의 양보를 이끌고 이를 빌미로 수도를 발가벗기는 태도는 사술(詐術)로 국민을 얽는 모양 아닌가. 입법 사법부까지 다 옮기며 이것은 "행정수도"라 다시 묻지 않겠다는 태도는 어떤 억지라도 권도(權道)로 뚫겠다는 권위정부의 모습 아닌가. 다음 도읍이전의 본심이 의심받지 않는지 돌아봐야 한다. 누구보다 남북화해에 골몰한다는 정권이 웬 남천(南遷)인가. 6% 지속성장,금융과 물류의 허브를 외치며 경국(傾國)의 비용을 들여 국가중심을 분산시키자는 이유가 무엇인가. 국토균형발전만으로 이 시대착오성과 이율배반을 모두 설득하려 하는가. 대통령 스스로 말한 "한 시대와 지배세력의 변화를 위한 수도이전", 곧 정치적 목적만이 이 모든 역류를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국도이전은 6백여년래 벌리는 일대 국사(國事)다. 분열된 국론하에 몇년만에 뚝딱 해치울 공사가 아니다. 국민적 호응을 끌어내지 못한 천도가 국가사회에 어떤 낭비 혼란 분열과 좌절을 초래할 것인지,그때 현 정권은 어떤 역사적 책임을 질 것인지 "지금"생각해야 한다. 현 정권은 스스로가 6백년래 천도의 대명을 수권(授權)한 역사적 집단인가를 아직 확인할 기회가 있다. 전체 국민의사를 다시 묻는 것이다. kimyb@ca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