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秉柱 국민은 세금에 민감하다. 세금이 가파르게 오르면 조세저항이 일어나고 이것이 자칫 혁명의 빌미가 되기도 한다. 미국 독립이 그랬고 프랑스 혁명이 그랬다. 일단 걷힌 조세의 쓰임새에 대해서도 촉각을 세우는 국민이기에 정부 예산집행의 잘잘못을 챙기는 감사원에 대해 격려의 박수를 아끼지 않는다. 최근 정권의 나팔수 KBS의 방만한 경영에 대한 일침,엊그제 지방공항 과잉 건설에 대한 일갈 등이 그 예다. 반면 감사원이 국민을 오도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선진국의 경우 주로 회계감사를 기본업무로 하는 심계원을 두고 있으나,정책감사는 삼가는 것이 상례다. 국내에서도 처음에는 심계원이었다가 권위주의 시대 대통령의 정부 장악력을 강화시키는 차원에서 정책감사 권한까지 떠맡은 감사원으로 확대 개편됐다. 정부 각 기관의 업무를 감사하기 때문에 감사원은 정부 내 정부인 셈이지만 인력의 규모나 전문성 수준에서 각 부처를 따르기에 힘이 부친다. 그래서 현실과 동떨어진 감사의견이 간혹 나오고,결과적으로 국민의 대정부 신뢰에 금이 가게 만드는 사례가 있다. 얼마전 언론에 대서특필된 예금보험공사와 자산관리공사(KAMCO)의 공적자금 관련 비리를 캐낸 감사원 보도가 그러했다. 공적자금 투입 금융기관 직원들의 좀도둑질을 질타한 것은 잘한 일이다. 그러나 두 기관이 조직적으로 수천억원의 국고 손실을 끼쳤다는 지적이 사실과 어긋난다면,이 경우 정부 신뢰 실추에 따른 손실책임은 누가 질 것인가? 우선 KAMCO가 국제입찰로 부실채권을 매각하는 과정에서 부실채권 99억원짜리를 단돈 1백원에 매각했다는 지적은 모든 국민을 분노케 할 만했다. 알고 보면 이렇다. 외국계펀드의 입맛을 돋워 입찰에 응하도록 하자니 수십개씩 부실채권을 모아 몇개의 보따리(pool)로 묶어 파는 단순 대량매각 방식을 처음으로 선택하게 됐다. 보따리 따로따로 또는 엮어서 최고가를 쓴 응찰자에 낙찰됐는데,그도 실사시간에 쫓겨 큰 물건만 들여다보고 잔챙이는 1백원으로 기입했다는 얘기다. 다른 응찰자들은 그 물건은 높이 썼으나 보따리 전체가격은 낮았기에 선택은 불가피했다는 얘기다. 99년 5월 국제신인도 제고와 외환보유 증대를 위해 총력을 다하던 당시 상황을 배경으로,산전수전 다 겪은 외국계와 이 일이 생소한 국내 실무진이 마주 앉아 단기간에 성사시켜야 했던 어울리지 않는 맞대결(mis-match)을 머리에 떠올려야 한다. 환란 이후 치른 비싼 학습의 예였지 결코 잘못은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다음으로 부실채권정리기금으로 매입한 부실채권을 자체 일반회계로 싸게 넘겨 1천4백69억원의 기금 손실을 끼쳤다는 지적은 부적절하다. 세계은행(IBRD)과의 합의(3년내 인수 부실채권 50% 매각)에 따라 서둘러 마땅한 수요자를 물색했으나 찾지 못해 KAMCO가 떠안고 있는 것이므로 국가손실일 수 없다. 마지막으로 예보에 대한 지적이 치밀했다. 부실보험사 실효비금이 일종의 책임준비금이므로 부채로 볼 것인가,또는 이익으로 볼 것인가의 문제는 금융이론상 부채로 보는 것이 타당해 보인다. 우리종금 출자금 사후정산의 적정성 문제도 주식교환시 적절하게 처리했다는 예보의 답변에 힘이 있어 보인다. MOU를 체결한 금융기관이 인건비 등 경비의 과다 집행 등 자구노력 이행실적 미흡을 지적한 것은 원칙에 맞으나 우수인력 이탈 방지를 위한 현실적 고육지책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 반면 신협ㆍ금고 등 파산재단 직원의 횡령,부실보험사 재보험 관련 이익수수료 누락 등을 바로 잡은 것은 정당한 지적이었다. 감사원은 할 일을 하려 했을 것이다. 티끌 모아 태산을 이루었다기보다는 태산이 크게 울리더니 쥐새끼 몇마리 나온 느낌이 든다. 감사원이 제한된 인력으로 단기간에 판단하기 어려운 대목이 많았을 것이다. 잘 모르면 크게 일을 떠벌리지 않아야 마땅하다. 윤리성이 높다는 자만심이 현상을 관철하는 직관을 부여하지 못한다. 지식ㆍ정보가 뒷받침돼야 한다. 담당자들의 공명심도 좋으나 정부기관의 가상적 흠집을 실제적인 것으로 확대 발표해 국익에 이바지되는가? 하필 국가기관 신뢰도가 이처럼 절실한 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