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힌 곳은 뚫고 굽은 것은 펴겠다." 5공 전두환 군사정권이 막 출범하고 얼마 지나지 않은 1982년 당시 고려대 총장으로 있다 국무총리로 전격 발탁됐던 남재 김상협(金相浹.1920-1995) 선생이 취임일성으로 내뱉은 말이다. 이 말은 그에 대한 정치적 평가와 관계없이 오늘날까지 정치인들이 즐겨 사용하는 명언으로 남아 있다. 국무총리와 적십자사 총재, 고려대 총장 등을 지낸 남재의 삶과 사상 및 학문세계를 조명한 전기「남재 김상협 그 생애/학문/사상」이 출간됐다. 남재 김상협 선생전기편찬위원회 지음(위원장 홍일식). 한울刊. 916쪽. 4만5천원. 출판기념회는 정관계, 학계 인사들이 참석한 가운데 10일 오후 6시 고려대 인촌기념관에서 열린다. 남재는 전북 부안에서 태어났다. 1940년 일본 야마구치(山口) 고등학교를 거쳐1942년 도쿄대학 법학부 정치학과를 나왔고 1946년 고려대 정경대 조교수가 된 후부교수, 교수를 지냈다. 1962년 문교부장관이 되었다가 경복궁을 헐어 호텔을 지으려는 정부정책에 반대해 미련없이 장관직을 버리고 1963년 고려대 정경대 교수로 복직했다. 1970∼1975년과 1977∼1982년 고려대 6대, 8대 총장을 두차례 역임했다. 1980년국가보위입법회의 의원, 1982∼1983년 국무총리를 지내다 물러난 뒤 1985∼1991년대한적십자사 총재로 있으면서 사회봉사에 힘썼다. 저서로는 「기독교민주주의」, 「사회민주주의」, 「모택동사상」, 「지성과 야성」등이 있다. 정치학자와 대학총장으로 학계에서 신망이 두터웠던 남재가 도덕성과 정통성에문제가 있던 5공 정권에 참여한 것을 두고 당시 그를 따르고 아꼈던 많은 사람들이의아해 했다고 한다. 대학총장출신 첫 국무총리가 됐던 그는 취임일성과는 달리 KAL기 사건과 아웅산폭발사건 이후 내각개편때 총리직에서 물러날 때까지 1년3개월간 재임기간 다른 총리들과 별다른 차별성을 보이지 못하고 국민의 기대도 채우지 못한 채 정통성 문제로 부담을 갖고 있던 5공 정권의 민심달래기 카드로 이용된 측면이 크기 때문이다. 정치인으로서는 빛을 보지는 못했지만 대학교수로서, 대학총장으로서 남다른 족적을 남겼다. 교수시절 그는 다른 학교 학생들이 `도강'할 만큼 강의 잘하는 교수로 이름을떨쳤고, 총장시절 소신 발언으로 대학가는 물론 일반에게까지 영향을 미칠 만큼 주목을 받았다. 특히 냉전시대 당시 상당한 용기를 무릅쓰고 쓴 「모택동사상」은 정치학계에서공산국가 중국을 본격적으로 연구하는 문을 연 역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유신으로 대학가 데모가 끊이지 않을 때 그는 대학총장으로서 하기 어려운 "학생 동요 이유 있다"는 발언이 문제가 돼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물러나기도 했다. 대학총장과 총리에서 물러난 뒤 남재는 적십자사 총재로서 의욕을 보이기도 했다. 교수시절 민선 평양시장이 꿈이라고 말할 만큼 민족문제에 남다른 관심을 가졌던 그는 적십자사 총재시절 고향 방문단장으로 평양을 방북했고, 국교가 없던 구 소련 적십자사와 중국 홍십자사와 공식교류를 성사시켰다. (서울=연합뉴스) 서한기기자 shg@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