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15일 제네바에서 열리는 제60차 유엔인권위원회 회의에서도 한국은 `낮은 포복'을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제 60차 유엔인권위원회 회의는 오는 15일부터 다음달 23일까지 6주간의 일정으로 제네바의 유럽 유엔본부 회의장에서 열릴 예정. 이번 회의는 미국이 중국을 상대로 한 인권 규탄 결의안을 상정할 뜻을 비치면서 중국과 가시돋친 말싸움을 벌이고 있어 벌써부터 국제 언론들의 비상한 관심을모으고 있다. 특히 올해 회의는 유럽연합(EU)이 지난해의 59차 회의에 이어 또다시 북한 인권규탄 결의안을 재상정할 것으로 보여 이를 둘러싼 한바탕의 격론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유럽연합은 의장국인 아일랜드 주관으로 대북인권결의안 초안을 마련키로 하고현재 발의를 주도할 국가를 물색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결의안은 다음달 초에 윤곽이 마련되고 표결은 15일께 이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EU가 재상정 방침을 굳힌 것은 지난해 4월 대북인권결의안 채택에도 불구하고북한의 인권상황이 개선되지 않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EU는 지난해의 결의안을채택하면서 북한의 이행 여부를 다음 회의에서 다시 논의한다는 문구를 넣었다. 북한은 그러나 유엔의 경제.사회.문화적 권리 위원회와 아동권리 위원회 등 국제협약상에 정해진 절차에는 응하되, 유엔 인권위의 결의나 특별보고관의 파견 등에대해서는 한사코 부정적인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북한은 지난달 유엔인권고등판무관실(UNHCHR)에 보낸 보고서에서 인권위의 지난해 결의안은 이중잣대를 적용한 부당한 것이라며 EU를 비난하고 북한 인민이 납득할수 없는 결의안을 결코 수용하지 않을 것이라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지난해의 대북인권결의안은 한국을 포함한 53개 위원국중 찬성 28, 반대 10, 기권 10표로 통과됐지만 한국은 끝내 표결에 불참하고 말았다. 한국 정부의 소극적 입장은 이번 회의에서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한국 정부는 아직 EU측 초안이 아직 마련되지 않았고 EU와의 양자협의도 시작되지 않은 만큼 표결에 대한 방침을 정하지 않았다고 밝히고 있으나 지난주초 관계기관 대책회의를 통해 내부적으로는 이미 기권 방침을 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가 기권을 택한 것은 지난해 표결 불참 결정이 여론의 따가운 비판을 받았던 탓인 것으로 보인다. 북한 핵문제 협의와 남북관계를 고려, 찬성표를 던지는 방안은 애초부터 고려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제네바의 인권 관측통들은 `참여정부'는 '국민의 정부'가 강조한 '조용한 외교'를 계승한 것으로 해석하면서 한국이 지난해 표결에 불참한 것은 북한 정권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는 것이 낫다는 전략적 고려라는 측면에서 충분히 이해한다고 말한다. 관측통들은 지난 99년 한국 외교부 장관이 유엔인권위에 참석, 탈북자 문제를조심스럽게 거론한 것을 제외하고는 인권위에 일체 장,차관급 고위급 인사를 파견하지 않은 것도 이런 맥락에서 해석하고 있다. 국제 인권단체 관계자들은 그러나 이번 회의에서도 한국이 EU의 결의안이 미처나오기도 전에 기권 방침을 흘린 것은 볼썽 사납다고 말한다. 한국 정부 대표는 형식적이고 의례적인 발언을 반복할 뿐이며 행여 북한을 자극할까를 걱정해 '북한'이라는 용어조차 회피하는 것은 문제라는 것이 이들의 지적.기권은 하되 할 말은 해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북한인권시민연합과 같은 한국의 NGO, 영국을 비롯한 몇몇 유럽 NGO들이 회의장주변에서 적극적인 관심과 지지를 외치는 한편에서 한국 정부는 '입의 침묵'을 고수하는 것은 너무 간극이 크다고 한 국제인권 관계자는 꼬집기도 했다. 또다른 인권단체 관계자는 한국이 군대 위안부 문제와 같은 특정 사안에 있어서는 일본을 집중적으로 타격하되, 정작 북한 인권에 대해서는 모호한 입장만을 고수하는 것은 모순적인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유엔본부에 출입하는 한 외국 언론인은 일본이 다음달 있을 유엔인권소위의 위원 교체를 앞두고 한국측 위원 입후보자에 대해 한국 인권외교의 이런 협량한 측면을 부각시키며 네거티브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는 얘기도 있다고 귀띔했다. 이런 말들이 무성한 것을 보면 한국의 인권외교는 내부 지향적인데서 벗어나지못하며 유엔이라는 다자주의 외교 공간에서는 국제사회가 기대하는 몫을 못한다는자체 평가가 이미 제네바 외교가에서는 굳어진 듯하다. UNHCHR 관계자들은 한국이 북한 문제에 관한한 난처한 입장이기는 하되, 북한이아닌, 다른 인권침해국에 대해서도 말을 아끼는 것, 인권기구에 대한 기여가 소홀한것도 불만스럽다고 말한다. 이들은 탈북자 문제도 한국이 말을 조심해야겠지만 국제인권기구의 탈북자 지원활동 등을 고려해 일본 수준은 아니더라도 성의 있는 수준에서 자발적 기여금을 내야 하는 것이 아니냐고 꼬집는다. 한국이 지역 인권회의 유치를 구두로 약속해 놓고는 담당자가 교체됐다는 이유로 나몰라라 하는 것도 이들의 불만을 키우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제네바=연합뉴스) 문정식 특파원 jsmoo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