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권의 `순혈주의'가 급격히 무너지고 있다. 제2금융권과 외국계 은행 출신이 주요 시중은행장에 속속 입성하고 은행 임원의외부 영입 비중이 늘어나면서 국내 은행 출신 토종들의 설 자리가 갈수록 좁아지고있다. 은행권의 이러한 `확 바꿔' 바람은 황영기 전 삼성증권 사장의 우리금융지주 회장 후보 선임으로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제2금융권 출신 은행장 두각 제2금융권이나 외국계 은행 출신을 거쳐 시중은행장이 되는 게 점차 정형화되고있다. 국내 은행권 랭킹 1, 2위인 국민은행과 우리은행의 은행장이 모두 제2금융권 출신이라는 점만으로도 이러한 현상은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국내 은행권에서 영향력이 가장 큰 인물인 김정태 국민은행장은 동원증권 사장출신이다. 우리금융 회장으로 취임할 황영기 후보가 우리은행장을 겸할 공산이 매우 큰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렇게 되면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을 거쳐 대한투자신탁증권 사장을 역임한 이덕훈 현 행장에 이어 제2금융권 출신이 연달아 행장으로 영입되는 것이다. 작년 론스타 인수 이후 중도 하차한 이강원 전 외환은행장도 LG투자증권 부사장과 LG투자신탁운용 사장을 거친 제2금융권 출신이다. 외국계 은행 출신도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최동수 조흥은행장은 체이스 맨해튼은행, 하영구 한미은행장은 씨티은행 출신이고 외환은행과 제일은행은 아예 외국인행장이다. 순수한 국내 은행 출신을 꼽자면 전체 8개 시중은행 가운데 김승유 하나은행[002860]장과 신상훈 신한은행장 정도다. 김 행장도 하나은행 전신인 단자회사 한국투자금융에서부터 출발했으니 따지고 보면 제2금융권 출신인 셈이다. ◆임원도 외부 수혈 바람 조흥은행은 지난 5일 최인준 HSBC증권 부대표를 종합금융본부장에 앉혔다. 작년 8월 체이스 맨해튼 출신의 김재유씨를 여신기획본부장으로 영입한 데 이어 두번째다. 론스타가 주인이 된 외환은행[004940]은 지난달 수석부행장 직제를 신설, 미국제너럴 일렉트릭 임원 출신인 리처드 웨커씨를 영입했다. 국민은행은 삼일회계법인 부대표 출신에서 영입된 윤종규 부행장이 개인금융본부장을 맡는 등 전체 9명중 5명이 외부 영입파이고 하나은행은 방효진 투자금융본부장과 서정호 리스크관리 담당 상무가 각각 외국계 금융회사 출신이다. 주요 보직 부장 또는 팀장도 영입 붐이 일고 있다. 국민은행은 핵심 브레인 역할을 맡는 전략기획팀장에 멕킨지 컨설팅 출신인 이성원씨를 영입했다. 조흥은행이 작년 말에 영입한 박근생 투자금융부장과 이범준 자금시장부장은 모두 체이스 맨해튼은행 출신이다. ◆인사 관행 개혁..성과주의 도입해야 요즘 은행원들 사이에서는 "이러다가는 순수 은행 출신의 임원되기가 하늘의 별따기가 되지 않겠느냐"는 자조적인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있다. 또 국내 은행 고유의 업무 특성이나 영업 관행을 무시한 채 전문성과 참신성만앞세워 외부 인사들을 `수혈'하는 것을 마치 미덕처럼 여겨지는 풍토가 문제라고 꼬집는 이들도 많다. 그러나 이런 `충격요법'이 필요할 정도로 비효율과 비전문성, 보수적 문화에 찌든 게 바로 국내 은행이라는 자성도 크다. 한 시중은행 임원은 "은행원을 20년, 30년 해봐야 똑 부러진 전문성은 없고 각분야를 수박 겉핥기식으로만 아는 팔방미인이 된다"고 지적하고 "관치금융과 연공서열 위주의 인사 관행에 익숙해진 탓에 은행원 중에서 인물 찾기 어렵다"고 털어놨다. 이에 따라 은행원 스스로 경쟁력을 갖출 수 있도록 성과주의 도입과 능력 위주의 인사, 내부 인력 양성 프로그램을 강화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이 임원은 강조했다. (서울=연합뉴스) 노효동기자 rhd@yonhapnew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