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이제는 경제? .. 安國臣 <중앙대 경제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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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은 풍파와 같고 행동에는 득실이 따른다." 장자의 인간세(人間世)에 나오는 말이다.
최근 전국 1백80여개 대학에서 1천80여명의 교수들이 '이제는 경제'서명운동에 참여했다.
"지금 한국경제는 흥망의 기로에 서 있다.
국가경제운영시스템은 혼란에 빠져 있으며 일반서민들의 생활수준은 추락하고 있다.
이대로 시간을 허비하면 우리 경제는 서서히 무너져 버릴 것이 자명하다." 이렇게 시작하는 성명서는 정부와 국민,그리고 노사 모두가 경제살리기에 온 힘을 모아야 한다고 촉구하고 있다.
우리 경제를 진심으로 걱정하는 충정이 드러나는 시국선언문이다.
장자가 갈파한 바와 같이 말은 바람이나 파도처럼 덧없이 움직이고 바뀌기 쉽다. 유감스럽게도'이제는 경제'성명서도 이런 말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성명서는 현재의 경제위기 타파를 위해 무엇보다 투자확대와 일자리창출이 필요하다고 규정한다.이어 투자확대와 일자리창출을 위해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경제신문의 사설이나 재계의 회동에서 나옴직한 이 주장이야말로 성명서의 가장 큰 허점이다.정부가 특단의 대책을 세우면 현 경제난국이 곧 풀릴 것이라는 잘못된 기대를 일반국민에게 심어주는 말이기 때문이다.이런 환상적인 특단의 대책은 없다.
뜨거운 가슴에 이끌리는 현 정부에 특단의 대책을 주문하면 법인세 인하,정부지출 확대,공공부문의 비정규직 창출,신용불량자 구제등 대중영합적 경기부양책들만 양산되기 십상이다. 이런 대책들은 득보다 실이 많고 일본의 경험에서 보는것처럼 재정을 엄청난 적자의 늪에 빠뜨린다.이런 큰 허점에도 불구하고 많은 교수들이 성명에 동참했다.
왜 그랬을까? 그 주된 이유는 대통령이 더 이상 기본에 어긋나는 언행을 하지 않기를 바라는 비원(悲願) 때문이라고 본다.
지난 대통령선거 때 이회창 후보가 6% 성장을 공약하자 노무현 후보는 7% 성장을 공약했다.
앞으로 우리 경제의 잠재성장률이 5% 내외라고 모든 연구기관들이 전망하는 상황이었다.
경제의 기본을 무시하는 노 후보에 대해 대다수 경제학자들은 '이건 아니다'고 고개를 저었다.
집권 후 대통령이 노사간 힘의 사회적 균형을 맞춰주겠다고 한 발언은 역사 흐름의 기본을 외면하는 것으로 평가하기에 충분했다. 김대중 정부도 출범 초기 못가진 자와 근로자를 부추기기 위해 노사문제를 법과 경제논리가 아닌 대화와 사회적 합의로 풀어가려 했었다. 그러다 불법적 집단이기주의가 기승을 부려 죽도 밥도 안되니까 후반기에 법과 원칙을 앞세우게 된 것이다.어렵게 법치가 자리잡기 시작한 시점에서 새정부가 노사간 힘의 균형을 새삼 추구했으니 헌법 위의'떼법'이 기승을 부리고 집단이기주의가 봇물을 이룬 건 당연한 결과이다.
재신임과 10분의 1 발언도 기본과 상식에서 벗어나기는 마찬가지다.
기본과 상식이 이처럼 도외시돼 나라가 계속 어지러우면 위기를 알면서도 당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안 일어난다는 보장이 없다.
이런 문제의식을 가지고 많은 학자들이 덧없는 말에 개의치 않고 서명에 참여한 것이다.
최근에 경제가 많이 어려워지니까 대통령은 이념발언을 줄이고 시장경제와 효율을 중시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런 상황론적인 변신은 나중에 또 어떻게 바뀔지 모른다.
대선자금관련 수사도 언제까지 어떻게 진행될지 모른다.
이 두 가지 큰 불확실성이 어느 정도 해소되고 수익성이 보이면 기업들은 투자하지 말래도 투자하고 고용을 늘릴 것이다.
지금 잘 나가는 기업들은 사상 유례없이 자금사정이 넉넉하다.
성명서는 대통령이 경제살리기에 관심과 역량을 집중하도록 주문하고 있다.
그러나 대통령이 경제살리기에 관심과 역량을 집중한다고 해서 경제가 곧 살아나는 것도 아니다.
대통령이 할 일은 더 이상 기본에 어긋나는 언행으로 국정불안과 경제 불확실성의 진원지가 되지 않는 것,그리고 경제를 이념적으로 접근하지 말고 경제팀에 힘을 실어 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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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의 내용은 한경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