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세청은 각종 세정개혁을 위해 발족된 '세정혁신추진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올해부터 기업이 50만원 이상 접대를 할 경우 접대 상대방의 이름과 접대목적을 나타내야 비용으로 인정해 주는 제도를 마련해 시행하고 있다. 그러나 이헌재 경제부총리는 취임 후 가진 산하 기관장과의 간담회 자리에서 "접대실명제 시행은 시기적으로 적절하지 않았다"고 언급한 바 있다. 재계도 경제가 어려운 점을 감안해 접대실명제 시행시기를 늦추고,그 대상금액을 줄여달라고 요청하고 있다. 하지만 이용섭 국세청장은 27일 대한상의 초청 조찬간담회에서 접대실명제를 예정대로 밀고 나간다는 방침을 분명히 했다. 정부는 접대실명제가 시행돼야 하는 주된 이유로 기업의 투명성과 경쟁력 확보,그리고 업무 관련성이 없는 접대비에 30%의 세제지원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꼽고 있다. 이 점에는 재계도 동의한다. 그러나 재계는 우리나라 접대문화 현실을 들어 접대실명제 도입을 반대하고 있다. 접대 상대방을 밝히기가 어려운 현실에서 도입한다면 기업 활동이 위축되기 때문에 기업경영상 또 하나의 규제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재계는 아직도 접대실명제에 대해 불안감을 갖고 있는 게 사실이다. 정부는 투명성 확보를 위해 과거 관행을 허무는 데 따르는 불안감을 불식시키고,그 이후 기업에 돌아올 이익을 당사자들이 확실하게 인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아무리 몸에 좋은 보약이라도 마음이 내키지 않는다면 그 효과는 반감될 수 있는 것이다. 세정당국은 실명제 시행과정상 나타나는 문제점을 신속히 시정해 기업이 갖고 있는 불안감을 해소하는 것이 선결과제다. 현재 접대실명제와 관련한 논란의 중심은 '접대실명제 대상금액'이다. 건당 50만원 이상이 현실에 맞는가에 대한 논란인 것이다. 현실에 맞지 않는 규제는 당사자가 편법을 동원해서라도 빠져나가기 때문에 실효성을 거두기 어렵다. 비씨카드에 따르면 접대실명제 시행 후 대표적 접대업종인 골프장과 룸살롱의 50만원 이상 결재건수는 줄었지만 50만원 미만은 늘어났다고 한다. 기업이 실명제를 피하려 영수증 쪼개기 등 편법을 동원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수치다. 현재 시행중인 접대비에 대한 규제는 '접대실명제' 말고도 많다. 접대비를 비용으로 인정하는 한도액이 있어 기업이 지출한 접대비의 대부분을 비용으로 인정받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그리고 5만원을 초과하는 접대는 신용카드 사용을 의무화하고 있다. 국세청의 최근 기업체 세무조사를 분석한 결과, 전체 추징세액의 43%가 접대비에서 나왔다는 사실에서도 접대비 규제의 현실을 짐작하고도 남는다. 접대실명제를 둘러싸고 있는 주변 환경은 어떤가. 기업입장에서 볼 때 접대실명제는 오랫동안 내려오고 있는 접대관행을 바꿔야 하는 어려운 문제다. 실명제 시행 만으로도 기업은 엄청난 변혁을 맞고 있다. 경제는 소비와 투자 위축에 발목이 잡혀 있다. 어느 것 하나 제도 시행에 우호적인 것이 없다. 접대실명제 관련 제반 여건을 감안할 때,정부는 재계가 요구하고 있는 실명제 대상금액을 상향조정하는 방안과 업무관련성이 명백히 입증되는 접대비는 실명을 밝히지 않더라도 비용으로 인정해 주는 방안을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 실명제가 정착되는 것을 봐 가면서 적용대상금액을 하향 조정하거나 입증방법을 강화해 가는 점진적 정착방안이 바람직해 보인다. 모든 정책은 당사자가 이익이 있음을 알고 적극적으로 참여할 때 실효성이 보장된다. 또 정책의 취지가 아무리 좋더라도 시행시기에 따라 독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정부 입장에서 우선 시행하는 것도 중요하지만,당사자인 기업이 갖고 있는 불안감을 해소해 가면서 정착시키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정부는 '접대실명제 시행을 연기하느냐,그리고 적용대상금액을 상향조정하느냐'에 대한 논의를 항상 열어 놓아야 한다. 불안하게 출발한 접대실명제가 정착되기 위해서는 시행과정에서 나타나는 전반적인 문제점에 대해 충분한 검토를 거쳐 현실에 맞게 보완하는 절차가 반드시 필요하다. /명지전문대 교수·경영학 박사 sktax114@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