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뽀드득 뽀드득.' 발아래 눈이 밟힌다. 흡사 스티로폼 위를 걷는 듯하다. 살을 에는 듯한 바람이 볼 위로 스친다. 그래도 싫지는 않다. 쨍 하게 와 닿는 것이 오히려 개운하다. 겨울 산행의 맛이다. 세속의 찌든 때를 털어주는 그런 느낌이다. 하도 험해서 대굴대굴 구르는 고개라는 뜻으로 불렸던 '대굴령'. 대관령(大關嶺)이란 이름은 여기서 유래했다. 아흔아홉 굽이로 대관령을 감싸고 도는 옛 영동고속도로는 새 길이 뚫리기 전까지만 해도 동해바다에 이르는 관문 역할을 했다. 그러나 세월은 어느덧 이 도로를 추억 속으로 밀어넣었다. 옛 고속도로 옆 계곡을 따라 형성된 대관령 옛길 등산로는 성산면 어흘리(가마골) 초입의 대관령 박물관에서 반정까지 약 4.3km 구간이다. 15일이나 걸려 한양까지 걸어갔던 시절,이 길은 고개를 넘는 가장 효과적인 루트였다. 강릉에서 생산되는 해산물과 농산물이 이 길을 통해 영서지방으로 건너갔다. 또 영서지방 토산품도 동해안 마을로 전달됐다. 그래서 오르내리는 데 4시간이면 충분한 길은 단순한 등산로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등산로는 어른 서넛이 나란히 올라도 될 만큼 폭이 넓어 여유가 있다. 경사가 완만해 아이들을 동반해도 무리가 없다. 길 양쪽에는 온갖 풍상을 다 겪은 듯한 노송과 활엽수 등이 이름표를 단 채 늘어서 있다. 낙엽송,떡갈나무,물박달나무,서어나무 등. 산길 곳곳에서 '그때 그 시절'의 발자취를 느낄 수 있는 것도 옛길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맛이다. 행인들이 피곤을 풀었던 주막거리,화전민이 농사를 지었던 자리는 터만 남았지만 변치 않는 정취를 준다. 입구에서 2km 남짓 오르면 비석 하나가 기다리고 있다. '이병화유혜불망비'. 초막에 살며 눈길에 갇힌 나그네들에게 먹거리를 제공했던 산사람의 은덕을 기리는 비석이다. 순조 24년(1824년)에 주민들이 세웠단다. 대관령 마루 가까이엔 신사임당 시비도 서 있다. 친정 부모를 두고 가는 신사임당의 정한이 새겨 있다. 언덕을 올라 산길에서 벗어나면 반정에 다다른다. 반정에서 대관령 정상까지는 1km가 채 안된다. 정상에 가면 예전의 대관령휴게소가 있다. 불과 3년 전까지만 해도 관광객들로 성시를 이뤘던 곳이다. 하지만 이제는 국내 최대라는 풍력발전기 한대만이 고적함을 지키고 있다. [ 여행수첩 ] 영동고속도로 횡계IC에서 빠져나와 횡계읍으로 가다보면 왼쪽으로 '대관령 옛 길' 표지판이 나온다. 표지판을 따라 길을 잡으면 옛 영동고속도로다. 길은 예전에 고속도로였다는게 믿겨지지 않을 만큼 한적하다. 길 양쪽에 늘어선 자작나무나 대관령 목장의 풀밭은 흡사 북미의 어느 지역에 온 듯한 착각이 들게 한다. 대관령휴게소를 지나 고개를 넘어 1km쯤 하행하면 오른쪽에 '대관령 옛길'이란 비석을 만난다. 비석 뒤쪽이 하행 등산로의 시작점이다. 산을 먼저 내려가도 좋겠지만 그보다는 고개를 좀 더 내려가 휴양림 입구에 주차를 한 뒤 아래서부터 출발,왕복산행을 하는 것이 더 좋다. 강릉 시내에서 어흘리행 25번 시내버스를 타면 휴양림입구까지 간다. 오전 9시50분부터 오후 8시50분까지 1시간 간격으로 운행한다. 대관령 자연휴양림 (033)641-9990 대관령=장유택 기자 changy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