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가 한.칠레 FTA(자유무역협정) 비준안을 처리하지 못한채 해를 넘기게 된 것은 참으로 한심한 일이다. 새해 예산안을 법정시한(2일)을 크게 넘긴 연말에야 가까스로 처리한 것도 비난받아 마땅하다. 한.칠레 FTA의 중요성을 너무도 잘 알고 있는 국회가 총선을 앞두고 농민표를 의식해 비준을 차일피일 미루고만 있으니 이러다 시대적 조류에 뒤떨어져 나라경제를 크게 그르치는 것은 아닌지 우려를 감추기 어렵다. 박관용 국회의장은 "1월 7~8일 본회의가 예정돼 있는 만큼 그때까지 각당 총무들과 협의해 보겠다"고 밝혔지만 총선때까지는 처리가 불가능할 지도 모를 형편이다. 물론 농어촌 출신 의원들의 반발은 한.칠레 FTA가 미치는 영향이 워낙 큰 만큼 이해되는 측면도 없지는 않다. 하지만 도시지역 의원들까지 나라경제가 걸린 중요한 사안을 처리하는데 동료의원들의 눈치만 살피면서 소극적 태도로 일관하는 것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동료 봐주기"로 일관하다 FTA가 무산된다면 국회는 나라경제를 망쳤다는 지탄을 면키 어려울 것이다. FTA부문에서 크게 뒤진 탓에 우리 기업들이 해외시장에서 입는 피해는 이만저만 큰 것이 아니다. 당장 이번 FTA대상국가인 칠레 시장에서는 자동차 휴대폰 가전제품 등 한국 상품의 점유율이 급격히 곤두박질치고 있다. 멕시코는 FTA체결국이 아닌 경우에는 정부발주 프로젝트에 입찰자격조차 주지 않을 뿐아니라 자동차 수입관세도 10%에서 50%로 대폭 올릴 예정이어서 시장에 발을 붙이기조차 힘들 것이라고 한다. 전세계적으로 현재 발효중인 FTA만 해도 1백84개에 달하고 국제 교역량중 절반 이상이 FTA회원국 사이에 이뤄지고 있을 정도로 경제블록화는 급진전되는 추세다. 아시아 지역의 경우도 중국 일본 인도 등이 시장 주도권을 장악하기 위해 협상에 적극 나서고 있다. 우리나라도 시대에 뒤지지 않으려면 칠레를 시작으로 싱가포르 일본 중국 등지로 빠르게 체결국가를 넓혀가지 않으면 안된다는 이야기다. 정부간 협상이 끝나고도 1년이상이나 질질 끌고 있는 한.칠레 FTA를 비준하지 않고서는 FTA를 확대해 나갈 기반은 결코 마련될 수 없다. 이번 임시국회 회기내에는 무슨 일이 있더라도 반드시 한.칠레 FTA를 비준하기를 다시한번 촉구한다. 또 정치권은 예산안을 늑장 처리할 경우 고통을 받는 것은 정부가 아니라 유권자인 국민이란 사실을 명심하고 다시는 이런 일을 되풀이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