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주(虛舟·고 김윤환 전 의원의 호)가 15일 파란만장한 정치이력을 뒤로한 채 빈 배로 떠났다. 1980년대부터 20여년간 승승장구하며 한국정치의 중심에 우뚝 섰던 김 전 의원이 정치역정의 막바지에 변방으로 내몰려 병마와 씨름하다 쓸쓸하게 돌아간 것이다. 조선일보 편집국장 대리를 지낸 5선의 김 전 의원은 5공말 정무수석,대통령 비서실장을 거쳐 6공과 김영삼 정부시절에 사무총장 2번,원내총무 2번,정무장관 3번,여당 대표 2번,야당 대표 등 화려한 경력을 쌓은 현대 정치사의 산증인.탁월한 현실정치 적응력과 위기국면에서의 돋보이는 조정력,특유의 친화력을 가진 정치인으로 늘 주변에 사람들을 몰고다녔다. 특히 그는 두 차례나 정권창출의 핵심역할을 담당해 '킹메이커'라는 별명을 얻었다. 5공말 대통령 비서실장 때 고교동창인 노태우씨를 대통령으로 만드는데 일익을 담당했다. '여소야대'였던 90년 막후에서 3당통합을 주도해 거대여당을 탄생시켰고,92년 대선에선 민정계 출신이면서도 민주계인 김영삼 대표의 후보추대를 주도하고 김영삼 대통령 만들기의 선봉에 서 결국 문민정부 탄생의 1등공신이 됐다. 97년 대선 때는 당내 지지기반이 없었던 이회창씨의 정치적 후견인으로 변신,'이회창 후보 만들기'에 나서 드라마 같은 성공을 거두기도 했다. 하지만 이 후보가 낙선하는 바람에 '킹메이커'의 뜻을 이루지 못했고 이 때부터 쇠락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정치인 사정에 걸려 고생하더니 2000년 16대 총선에서는 이회창 전 총재로부터 공천에서 배제되는 아픔을 맛봤고 민국당 간판으로 재기를 모색했으나 끝내 좌절됐다. 이 전 총재가 불법대선자금에 대해 국민에게 사과하고 검찰로 향한 그 시각에 그는 세상을 떴다. 이재창 기자 leej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