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반기 연예가에 인 '누드' 바람이 올 가을에는 공연가로 옮겨온 듯 하다. 얼마전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이 시즌 개막작으로 선보인 오페라「리골레토」에 전라.반라의 남녀 연기자가 출연한데 이어 무용계 쪽에서도 전라 장면이 등장하는작품들이 잇따라 무대에 오를 채비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지금까지 국내 공연가에 이러한 작품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무용, 연극 등 여러 장르에서의 '벗는' 시도는 그동안 심심찮게 있어 왔고, 그럴때마다 '예술이냐, 외설이냐'라는 진부한 논쟁과 함께 삐뚤어진 상업성에 대한 비판이 종종 일기도 했다. 하지만 올 가을 선보인 일련의 작품들은 상업성을 내세운 '벗기기'라기 보다 작품의 주제를 보다 효과적으로, 예술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누드를 사용하면서 그 수위도 이전보다 과감해졌다는 점에서 주목을 끌고 있다. 「리골레토」의 경우 비록 해외 연출진이 만들어낸 작품이긴 했지만 국내 오페라 공연 사상 처음으로, 그것도 국내 대표적 공연장인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무대에서 전라신이 등장한다는 점에서 공연 전부터 상당한 화제를 불러 일으켰다. 이 '문제의 장면'은 작품 전체에서 보면 일부에 불과했지만, 상반신을 드러낸 여성 6명이 남성들과 벌이는 '유희'가 10여분간 노골적으로 묘사됐으며, 남녀 한쌍은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나체를 관객들에게 보이기까지 했다(물론 이들은 성악가나 합창단원이 아닌, 순수한 연기자들이었다). 극중 주인공인 만토바 공작의 궁정에서 벌어지는 난교 파티를 원작 그대로 여과없이 재현한다는 것이 연출 의도로, 지금까지의 국내 오페라 관행에 비춰볼 때 분명 파격이었다. 그런가하면, 무용 쪽에서도 오는 25-26일 문예진흥원 예술극장 대극장에서 미국의 현대 무용수 모린 플레밍이 1시간 동안 알몸으로 춤을 추는 현대무용「애프터 에로스」가, 27-29일 예술의전당 토월극장에서는 전체 45분 가운데 10여분간 전라 장면이 등장하는 프랑스 프렐조카주 발레단의「봄의 제전」이 각각 공연된다. 태초의 인간이 갖고 있는 신비, 순수함을 표현하고('애프터 에로스'), 원시 제의식에서 제물로 바쳐지며 발가 벗겨지는 여성을 통해 인간의 근원적 공포를 드러낸다('봄의 제전')는 것이 이들 작품의 초점. 또 국내 뮤지컬작품도 이런 과감한 누드신을 시도할 예정이다. 12월 6일부터 내년 1월 18일까지 한전아츠풀센터에서 공연될 뮤지컬「풀몬티」에서는 극중 철강 노동자로 분한 배우들이 생계를 위해 스트립쇼를 벌이며 실제로 '나체'를 보여주는 장면이 등장한다. 이렇듯 잇따르는 일련의 작품들 속에서 누드가 일부이건, 전체이건, 작품의 초점이 무엇이건 간에 이를 대하는 관객과 공연 기획자들의 시선은 어떠할까. 대부분의 공연 기획자들은 관객들이 관심이 '벗는' 것에만 쏠리는 것을 못마땅해 하고는 있지만 예나 지금이나 티켓 판매에 도움이 된다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전회 매진을 기록한「리골레토」의 경우는 이러한 관객들이 관심이 혹시라도 '선정성' 논란으로 이어지지 않을까 우려, 기획을 한 예술의전당이 공연 전 대책회의까지 열며 고심을 거듭했다. 하지만 정작 공연이 끝난 후 관객들의 반응은 의외로 차분했다. 그 '문제의 장면'이 생각만큼 심한 수준은 아니었다거나, 무대가 객석에서 너무멀어 잘 보이지 않았다거나,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어찌됐든 오페라에서의 이러한 '파격'을 무리없이 받아들인 관객들에게 전당측도 적잖이 놀라는 분위기다. 예술의전당은 "사실 예전 같으면 쉽게 들여오지 못했을 작품인데 이제 '몸'에대한 담론 자체가 상당히 자연스러워진 것 같다"며 "관객들도 이번 작품을 드라마전개 과정의 일부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인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음악평론가 한상우씨도 "외국에서 공연되는 작품들을 보면 이보다 훨씬 심한 연출도 많다"면서 "이번 공연이 국내 관객들 사이에서 별 논란없이 지나가는 것을 보면 그만큼 우리의 문화도 다양화된 것"이라고 평했다. 문화의 다양화는 좋지만 예술 작품에서의 '파격'이 관객들의 말초적 호기심을자극하는 쪽으로 확대 재생산돼서는 안될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예술의전당 고희경 공연기획팀장은 "최근 이러한 경향이 앞으로 다른 공연들의기획 과정에 빌미를 주게 될까 염려스럽다"며 "불필요하게 선정성이나 논란을 부추기는 시도는 경계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서울=연합뉴스) 이윤영 기자 yy@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