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세청 대선자금 모금 사건인 '세풍' 사건은 5년여만의 우여곡절 끝에 열린 18일 1심 선고 재판에서 '한나라당과 국세청 고위간부의 공모' 사실이 인정됨으로써 사법부의 첫 단죄가 이뤄졌다. ▲재판경과 = 지난 98년 8월31일 서상목 당시 한나라당 의원이 김포공항에서 미국으로 나가려다 법무부에서 출국금지 조치를 당하면서 세간에 알려진 이 사건은 '정치탄압'이라는 한나라당의 강한 반발 속에 수사단계부터 험로가 예고됐다. 검찰은 당시 동아건설의 해외 재산도피 의혹을 수사하던중 동아건설이 임채주전 국세청장 요구로 5억원을 제공한 사실을 포착하고 수사에 돌입했다고 밝혔으나 한나라당은 '표적수사'라고 주장했던 것. 검찰이 서 전의원에 대해 사전 구속영장을 청구하자 한나라당은 '방탄국회'를 열어 이에 맞서면서 김대중 전 대통령의 대선자금은 수사하지 않고 야당 대선후보의 자금만 수사하는 것은 검찰의 공소권 남용이라고 비난했다. 결국 98년 10월 검찰이 임채주 전 국세청장을 기소한 데 이어 같은해 12월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의 동생 회성씨를 구속기소하고 이듬해 9월에는 방탄국회의 보호를 받던 서상목 전 의원마저 불구속기소하면서 사건은 1년여만에 법원으로 넘어왔다. 그러나 법원에서도 피고인들이 혐의를 극구 부인하고 관련 증인들이 출석을 거부해 재판이 공전을 거듭했고 재판은 다시 정권이 교체되고 담당 재판부가 세번이나 바뀌도록 1심 선고가 이뤄지지 못했다. 더욱이 이 사건의 핵심 열쇠를 쥐고 있던 이석희 전 국세청 차장은 미국으로 도피, 검찰이 미국에 범죄인 인도청구를 한지 2년만인 지난해 2월에야 미국 연방수사국(FBI)에 체포되면서 올 3월 국내에 송환돼 실마리를 찾기 시작했다. 결국 지난 4월 이씨가 기소된 이후 그간 별건으로 진행되던 '세풍'사건은 1개 사건으로 병합됐고 7차례 심리를 거친 끝에 이날 1심 선고에 이르게 됐다. ▲ 1심 선고의 의미 = 이번 사건의 쟁점은 166억여원의 대선자금 모금이 국세청의 조직적 주도인지 개인 차원의 지원인지 여부 및 야당 후보에 대해서만 이뤄지는 수사에 정치적 고려가 있지 않았느냐는 것. 재판부는 "이회성 피고인이 국세청 간부들의 모금 행위를 알고도 이를 제지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한나라당과 국세청 간부들이 서로를 이용해 자금을 마련한 것"이라며 피고인들의 주장을 일축했다. 개인적 차원의 지원이 아니라 한나라당과 국세청 간부들이 조직적으로 공모해 이뤄진 범행이라는 게 재판부의 판단이다. 재판부는 특히 서상목 피고인에 대해 "자금 모금의 가장 주도적 역할을 해 무거운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고 밝혀 서 전의원이 이 사건의 '몸통'임을 시사했다. 또한 '정치탄압', '표적수사'라는 피고인측 주장에 대해 "기업에 막대한 영향력을 가진 국세청 고위 공직자들과 결탁해 자금수급이 특히 어려운 외환위기 직후에 기업에 막대한 부담을 지운 것은 그 중대성이 비춰 설령 정치적 고려가 있다 해도 책임을 묻는 것이 형평과 정의에 맞다"고 지적해 처벌의 불가피성을 역설했다. 이회성 피고인 등이 정치자금법 30조 1항 등에 대해 낸 위헌법률 심판제청 신청에 대해서도 "다소 규정이 추상적이고 포괄적이라 하더라도 법관의 해석을 통해 판단이 가능하다"며 기각해 정치자금 질서 확립에 대한 의지를 피력했다. (서울=연합뉴스) 김상희 기자 lilygardener@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