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새벽 투신자살한 정몽헌 현대아산 이사회 회장이 자살 직전에 남긴 유서가 공개됐지만 자살 동기가 구체적으로 드러나지 않은 가운데 정 회장이 최근 3차례 대검에 불려가 집중적인 조사를 받은 것으로 드러나면서 구체적인 자살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정 회장은 지난달 26일부터 이달 2일까지 3차례 대검에 극비리에 불려가 현대비자금 150억원과 관련, 조사를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정 회장이 특검 수사에 이어 대검 수사까지 겹치기 수사를 받으면서 받은 스트레스가 자살의 직접적인 계기인지 여부는 드러나지 않았지만 정 회장이 자살을 결행하기 위해 3일 밤 회사 집무실로 출근하기 하루 전까지 검찰 수사를 받았다는 점이 주목되고 있다. 특검팀의 한 관계자도 이와 관련, "대북송금 공판이 결심을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특검수사로 자살할 이유는 없다"며 "아마 검찰이 수사하고 있는 150억원 관련이 아닌가 생각된다"는 의견을 밝혔다. 이때문에 검찰 등 법조계 일각에서는 정 회장이 150억원 비자금 수사와 관련, 수사망이 서서히 좁혀져오자 측근들에게 미칠 여파 등을 감안해 `모든 것을 안고 가겠다'는 차원에서 극단적인 결단을 선택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분석을 제기하고 있다. 하지만 대검은 "정 회장에 대한 조사를 대화식으로 좋은 분위기속에서 이뤄졌으며 조사태도도 협조적이었다"며 비자금 수사를 정 회장 자살과 연결시키는 시각에 경계심을 드러냈다. 정 회장이 유서에서 밝히지는 않았지만 특검수사, 공판, 150억원 비자금 수사 등 일련의 과정을 거치면서 느꼈던 인간적 배신감, 좌절감 등 심적인 스트레스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는 설명도 설득력을 갖고 있다. 수사심리학에 정통한 한 검사는 "피의자와 피고인의 경우 수사와 공판과정에서 겪는 측근들로부터 느끼는 인간적 배신감 등 심리적 스트레스가 자살의 원인이 되는 경우가 많다"며 정 회장의 자살도 이와 비슷한 유형인 것으로 풀이했다. 자신이 부친의 유지를 받들어 역점적으로 추진해왔던 대북사업이 범죄로 단죄되고 남북관계까지 경색되면서 경협사업이 뜻대로 추진되지 않으면서 받은 정신적 충격과 좌절감도 자살의 동기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정 회장은 김윤규 현대아산 사장에게 남긴 A4 두장에 친필로 휘갈겨 쓴 유서에서 "명예회장님께서 원했던 대로 모든 대북사업을 강력히 추진하기 바랍니다"고 적었다. 정 회장은 부인에게 남긴 유서에서는 가족에 대한 미안함과 함께 "나의 유분을 금강산에 뿌려주기 바란다"며 금강산 관광사업 등 남북경협 사업에 대한 미련을 표현하기도 했다. 실제로 고 정주영(鄭周永)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사업 중 특히 고인이 생애 말기에 온 힘을 쏟은 대북 사업을 이어받았지만 부친 사망 이후 잇단 정치적.법적 공방에 휘말리면서 힘들게 사업을 이끌어왔으며 야당의 지속적인 반대와 특구 지정.육로관광 등에서 북측과 어려운 협상 등을 겪으면서 상당한 스트레스를 겪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정 회장이 특히 김 사장에게 남긴 유서에서 "어리석은 사람이 어리석은 행동을 했습니다. 어리석은 행동하는 저를 여러분이 용서해주기 바랍니다"고 언급한 대목은 김 사장 등 측근들이 사법처리된 것에 대한 심한 자책감을 느끼고 있었음을 암시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서울=연합뉴스) 이충원.조계창 기자 chungwon@yna.co.kr phillif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