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헌구 현대자동차 노조위원장의 얼굴엔 요즘 착잡함과 허탈감이 짙게 배어 있다. 한때 대한민국 최대 강성노조로 꼽힐 정도로 집행부에 대한 조합원들의 지지가 전폭적이었지만 최근 들어 이같은 열기가 눈에 띄게 식어가고 있는 까닭이다. 지난 24일 실시된 파업찬반 투표에선 사상최저인 54.8%만이 파업에 찬성했다. 이런 추세라면 26일 밤부터 27일 사이에 열릴 산별노조 전환을 위한 찬반투표 결과가 어떻게 될지 장담할 수 없다. 그는 사상최저 파업 찬성률과 관련해 "회사측의 조직적 개입 때문"이라는 노조 일부 간부들의 주장과는 달리 "노조 시스템의 부재"라며 스스로를 탓했다. 여기에 10여개가 넘는 강성 노동조직들은 그의 어깨를 더욱 무겁게 하고 있다. 현대차 노조는 하반기 노조위원장 선거를 앞두고 있다. 사상 최저 파업 찬성률이 선거를 겨냥한 현장 조직의 치밀한 계산이라는 분석도 일각에서 제기된다. 하지만 '정치적 이슈를 내건 집행부에 염증을 느낀 조합원들의 이반 때문'이라는 분석이 더 설득력을 얻고 있다. 강성 현장조직들이 파업을 벌이기 전 노조 집행부를 흔든 사례는 한번도 없었으며 산별노조 전환을 앞두고 투쟁열기를 높여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는 점이 그 근거다. 노조원들로선 집행부가 파업 이유로 내건 비정규직 조직화와 산별노조 전환이 실익이 없다고 판단했을 가능성이 크다. 외환위기때 대규모 정리해고를 경험한 조합원들로선 비정규직 조직화가 미칠 파급효과를 더 걱정하고 있다. 이 위원장은 지난해 6월에도 노사 임금협상 잠정합의안이 조합원 찬반투표에서 부결되는 수난을 겪기도 했다. 성과급 합의안이 만족스럽지 못하다는 이유에서였다. 조합원들의 욕구가 정치투쟁에서 실리 위주로 바뀌고 있는 셈이다. "산별전환 투표 결과를 겸허히 받아들이겠다"는 그의 말은 변화하는 조합원들의 의사에 맞춰 조기에 임단협 타결을 이끌어내겠다는 의지로 받아들여진다. 지난 91년 3대 위원장에 당선된 이후 파업 주도와 구속 해고 무급휴직 등으로 한국 노동운동을 주도해온 그가 앞으로 어떤 변화의 모습을 보일지 주목된다. 울산=하인식 기자 ha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