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업 사태를 풀기 위해 어렵사리 성사된 노.정 심야 협상이 20일 새벽 결렬됨으로써 앞으로 협상의 재개 여부와 타결 가능성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심야 협상 결렬은 조흥은행 노조의 돌연한 `협상 중단' 요청이 직접적 이유이지만 협상 내용도 양측의 기본적인 입장 차이를 재확인하는 절차에 그쳤다는 평가다. 그러나 그동안 "더 이상의 대화가 없다"고 외치던 양측이 파업의 장기화에 따른부담을 의식해 한 발짝씩 후퇴해 일단 대화의 자리를 가졌다는 점에서 극적인 대타협을 찾아낼 가능성도 높아지고 있다. ◆ 평행선 달린 노.사.정 정부와 금융노조, 신한지주간의 협상은 서로 입장의 `현격한' 차이만 확인한 채끝났다. 이용득 금융산업노조 위원장은 협상 시작 4시간만에 자리를 박차고 나와 "협상이 결렬됐다"고 선언했고 김진표 부총리도 협상 중단을 확인했다. 협상 결렬의 직접적인 계기는 조흥은행 노조의 협상 중단 요청이었다. 조흥 노조가 협상 전권을 위임받은 이용득 위원장에게 돌연 `판을 깨라'고 주문한 이유는 확인되지 않았지만 노조내 강경 기류가 우세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높다. 실제로 금융노조의 대화 분위기와는 달리 조흥 노조가 20일 새벽 전산센터 잔류정규 인력 전원을 철수시킨 것도 이런 분위기를 반영하고 있다. 그러나 조흥 노조의 요청이 아니라도 협상 결렬은 어느 정도 예견됐다는 게 지배적인 분석이다. 공적자금관리위원회의 매각 승인 이후 입지가 불리해진 노조가 먼저 협상을 제의했고 `금융 대란'을 우려한 정부도 이를 수용, 서로 쫓기듯 협상 테이블에 앉았지만 출발점인 `의제(아젠다) 설정'에서부터 치열한 언쟁이 벌어졌다. 노조는 `매각 철회'를 주장하는 반면 정부는 매각은 기정사실화하고 고용 문제에 한정시키려고 했기 때문에 처음부터 논의가 겉돌았다는 후문이다. 또 정부는 고용 조건에 관한 협상 당사자가 아닌 만큼 노조와 직접 대화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히고 노조는 과거의 전례를 들어 정부와 직접 협상을 요구하며 팽팽한 기싸움이 이어졌다. ◆ 무슨 얘기가 오갔나 협상 테이블에 마주 앉은 양측은 `매각 철회' 요구를 둘러싼 명분 싸움으로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이에 따라 현 상황에서 사태 해결의 실마리로 작용할 ▲고용 보장 ▲지주회사내독립 경영 ▲경영진 선임 등 경영 계획에 관한 사항은 제대로 논의되지도 못한 채협상이 중단됐다. 그러나 이미 협상의 무게 중심이 고용 보장 등 경영 계획 쪽에 쏠려 있고 여러채널을 통해 상당 부분의 의견 접근이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노조가 심야 협상에서 가장 비중 있게 언급한 대목은 `즉시. 대등' 합병이다. 이 경우 조흥은행 직원과 신한은행 직원이 동일한 고용 보장 조건을 갖게 돼 사실상 완전한 고용 보장이 이뤄진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지금까지 제시된 2∼3년의 고용 보장 조건은 추후 구조조정을 전제로 하고 있다는 점이 노조로서는 불안요인이다. 이에 대해 신한지주의 고위 관계자는 "당장 합병하는 것은 어렵고 시간을 두고합병 절차를 밟아 나간다는 계획"이라고 밝히고 "이 문제에 관한 협상은 없을 것"이라고 못박아 수용 불가 입장을 분명히 했다. 그러나 신한지주측은 ▲3년간 고용 보장 ▲독립 경영 보장 ▲조흥 브랜드 유지등에 관해서는 나름대로 `성의'를 보였다는 게 협상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 `전산다운' 현실화시 메가톤급 파장 우려 금융노조의 이같은 대화 분위기와는 달리 조흥은행 노조의 기류는 매우 강경하게 흐르고 있다. 노조는 파업 첫날인 17일 전산센터 정규직 340여명 가운데 310여명을 철수시킨데 이어 이날 새겨 남아있던 25명마저 빼내 전산시스템의 기능을 사실상 마비 상태에 빠뜨렸다. 비정규직 10여명과 협력업체 직원 50여명 등이 총동원돼도 1-2일 정도 버티는게 고작이라고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이에 따라 늦어도 주말까지 사태가 원만히 해결되지 않을 경우 사상 초유의 `금융 전산 대란'이 현실화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다시 말해 조흥은행을 거치는 모든 금융 거래는 물론 연결 계좌를 가진 은행.증권.보험사 등과의 거래와 카드 결제 등도 불가능해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금융계의 전산 관계자는 "한 은행의 전산시스템 가동이 중단되면 타행환 송금,어음 교환 등이 불가능해지기 때문에 사실상 모든 금융 기능이 정지될 수도 있다"고경고했다. ◆ 극적 대타협 가능성 그러나 노조의 이같은 움직임은 정부 및 신한지주측과의 협상에서 더 유리한 국면을 이끌어내려는 `강.온' 전략의 일환으로 풀이하는 시각이 많다. 금융노조가 공자위의 매각 결정 후 협상을 요청함으로써 `사실상 백기를 든 게아니냐'는 말이 나올 정도로 투쟁 의욕이 한풀 꺾인 것으로 평가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양측간의 1차 협상은 무위로 끝났지만 2라운드가 곧 재개될 것이라는전망이 유력하다. 이용득 위원장은 "협상이 결렬된 것은 조흥지부의 요청에 따른 것으로 협상 당시에는 어느 정도 이야기가 오가고 있었다"고 말해 일부 진척이 있었음을 시사하고"조흥지부의 요청이 오면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협상에 나서겠다"고 말했다. 김진표 부총리는 "협상을 하다 보면 산도 있고 계곡이 있을 수 있다"며 협상 재개에 대한 기대감을 표시했다. 실제로 금융노조는 실무 차원에서 정부 및 예보 관계자들과 핵심 쟁점을 놓고막후 협상을 지속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이르면 이날, 늦어도 21일 중으로 협상이 재개돼 극적인 대타협을 이룰가능성도 있다는 게 금융계의 대체적인 관측이다. (서울=연합뉴스) 노효동기자 rhd@yonhapnew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