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으로 인정받고 있는 경영자 한 분이 다음과 같은 고민을 털어놓은 적이 있다. 모든 것을 희생하면서 기업 경영에만 혼신의 힘을 다한 덕분에,여러 가지 난관이 있었지만 기업도 순조롭게 성장하고 본인도 능력 있는 경영자로 이름이 알려지게 됐다. 그러나 이름이 알려지게 되면서,사회 곳곳에서 여러 가지 요청들이 줄을 잇기 시작했다고 한다. 수많은 협회에서 참가를 권유했고,대학이나 기업들에서 강의 요청이 쇄도했으며,기업경영과는 관련이 없는 수많은 곳에서 모임 참석과 면담 요청이 이어진 것이다. 경영 이외의 활동에 많은 시간을 빼앗기는 것이 안타까웠지만,한국 내에서의 사회적인 관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시간을 할애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이제 나이 50대에 접어들어 거절할 수 있는 입장이 돼 더 이상 다른 일에 시간을 쓰지 않고 기업 활동에 전념하고는 있지만,40대 때 그럴 수 있었다면 기업을 좀 더 발전시킬 수 있었을 것이라는 아쉬움을 표시했다. 이러한 일은 경영자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우리 사회 각계각층의 전문가들에게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인 것 같다. 전문가들에게 가장 소중한 자산은 시간이다. 한정된 시간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전문가의 미래가 결정되며,경영자의 경우에는 해당 기업의 성패까지 좌우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가 잘 알고 있는 주위의 벤처 기업가들 중에서도 외부 요청 때문에 고민하는 사람들이 많다. 다른 일에 쫓기다 보면 회사에 쏟아야 할 역량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해 본인도 괴롭고 직원들에게도 미안하다는 것이다. 전문가의 입장에서 하루라는 시간은 너무나도 짧은 시간이며,한주일이나 한달도 제대로 된 일을 하기에는 짧게 느껴지는 경우가 많다. 외부 약속시간이 한시간밖에 되지 않는 경우라도,하던 일을 도중에 마무리해야 하고,약속 장소까지 갔다 와야 하기 때문에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또한 강의의 경우에는 이야기할 내용을 미리 준비해야 하기 때문에,시내라면 반나절,시외의 경우라면 거의 하루가 소모된다. 특히 연속해서 집중해야 하는 업무 중에 이러한 일이 생기면 시간 소모는 더 많을 수밖에 없다. 이러한 점을 볼 때,우리 사회는 전문가가 더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지 못하는 측면이 있다. 어느 정도 인정받은 전문가가 자기 본연의 일을 계속 잘할 수 있도록 놓아두지 않는 것이다. 조금만 성공하거나 이름이 알려져도 곳곳에서 여러 가지 요청이 쇄도한다. 강연 자문 면담 모임참석 요청 등이 줄을 잇는 것이다. 제의가 들어올 경우 거절하면 되지 않느냐고 쉽게 생각하는 분들도 있지만,실제 문제는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다. 우리나라의 밀접하게 맞물려있는 사회적인 관계 때문에 직접 연관이 없더라도 나쁜 관계를 갖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기 때문에 쉽게 거절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또한 아직도 우리 사회에서는 아무리 잘 설명을 하고 정중하게 거절하더라도 상대는 마음을 상하는 경우가 많고,때로는 유명해지면서 거만해졌다는 오해를 하기도 한다. 부탁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처음 부탁하는 것이기 때문에 조금만 시간을 내주면 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섭섭해 하지만,부탁받는 사람의 입장에서 얼마나 여러 사람으로부터 동시에 많은 부탁을 받고 있는지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글로벌 시대에 우리나라가 나아가야 할 길은 멀고 험하며,경쟁상대는 전 세계에 무한하게 퍼져 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우리나라의 전문가들이 국내 수준에 만족하지 않고 국제 경쟁력을 가질 수 있도록 더욱 노력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전문가들이 다른 일에 시간을 낭비하는 일이 없도록 배려하는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될 필요가 있다. 사회적인 공감대 없이는 여전히 다른 일에 시간을 많이 쓸 수밖에 없고,전문가로서의 발전도 현재의 수준에 머무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전문가가 전문가로서 성공한 근본적인 바탕을 유지해가는 것은 일차적으로 본인 자신의 책임이다. 그러나 그것을 도와주는 사회적 배려도 필요하다. 각계각층의 전문가들은 앞으로 우리 모두를 발전시킬 수 있는 우리 사회의 중요한 일꾼들이기 때문이다. drahnc@ahnlab.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