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경제의 회생여부는 향후 50일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로서는 오는 3월말까지 50일간이 일본경제를 살릴 수 있는 가장 좋은 기회다. 5년 임기의 새로운 일본 중앙은행 총재를 임명하는 기간이기 때문이다. 고이즈미 총리가 어떤 인물을 새 총재로 임명,통화정책을 어떻게 펼치느냐에 따라 일본경제는 살아날 수도 있고,더 나빠질 수도 있다. 하야미 마사루 현 일본은행 총재는 오는 3월19일 2명의 부총재와 함께 임기를 마치고 물러난다. 고이즈미 총리가 디플레 퇴치주의자들을 일본은행 총재 및 부총재 자리에 앉힐 경우 장기불황에 빠진 일본경제를 살릴 수 있는 기틀을 일단 마련하는 셈이다. 그후 다음 세 가지 정책을 적극 추진하면 일본경제를 디플레 늪에서 구해낼 수 있다. 첫째,고이즈미 총리는 일본은행측에 금리인하와 같은 전통적인 방법으로는 경제를 회복시킬 수 없으니 비전통적인 통화정책을 써야 한다는 점을 주지시켜야 한다. 이와 관련,고이즈미 총리는 새 일본은행 지도부에 압력을 가해 일정한 인플레율에 도달할 때까지 통화공급을 늘리는 소위 '인플레 목표제'를 도입토록 해야 한다. 둘째,더 이상 적자예산을 편성해서는 안된다. 이미 국내총생산(GDP)의 1백40%에 달하는 재정적자 규모는 매우 위험한 수준이다. 따라서 재정적자를 더 이상 늘리지 않으면서 총수요를 자극하는 공공지출 및 세제개혁을 단행해야 한다. 셋째,은행권의 부실대출 문제를 반드시 해결해야 한다. 사실상 도산상태인 좀비 기업들을 퇴출시키고,은행 중에서도 재정상태가 가장 취약한 은행은 국유화해야 한다. 고이즈미 총리는 특히 이 세 가지 정책을 개별적으로 시행해서는 안되며,조화와 균형감각을 가지고 패키지로 시행해야 한다. 그래야만 완만한 인플레를 유도하고,경제성장을 잠재성장률 수준으로 끌어 올릴 수 있다. 통화확대 없이 경제구조 개혁에 나설 경우 일본경제는 더 깊은 디플레 늪에 빠져들게 된다. 이 같은 정책이 제대로 시행되려면 일본은행 재무성 금융청 등 3개 부서의 긴밀한 협력이 필요하다. 3개 부서의 상호 협력을 이끌어낼 수 있는 사람은 고이즈미 총리 뿐이다. 현재 이 3개 정책 중 예산적자 감축과 부실대출 해소 정책은 시행에 들어간 상태다. 그러나 일본은행이 기존 통화정책을 고수하는 탓에 경제회복의 필요충분조건인 '3개 정책의 동시 실행'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현재 하야미 총재하의 일본은행은 통화정책으로는 디플레를 퇴치할 수 없다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인플레목표제 도입을 거부하고 있다. 얼마전 그는 인플레목표제에 의한 통화 확대를 '무모한 도박'이라고 비난했다. 고이즈미 총리는 이제 디플레 격퇴정신으로 무장된 인물들을 중앙은행 지도부에 앉혀야 한다. 그런 다음 '2년내 물가를 1~3% 끌어올리는' 인플레 목표를 설정하고,재정적자 감축 및 부실채권 해소정책을 강하게 밀어붙이면 일본경제를 살려낼 수 있다. 그렇지 않고 '디플레-재정적자'의 현 상황을 5년간 더 방치할 경우 정부 빚이 GDP의 2백%로 불어나면서 일본경제는 디폴트(채무불이행)에 빠질 위험이 있다. 정리=이정훈 기자 leehoon@hankyung.com -------------------------------------------------------------- ◇이 글은 일본 재무차관을 역임한 이토 다카토시 도쿄대 경제학교수가 영국 파이낸셜타임스에 기고한 'Koizumi's last chance to rescue Japan'을 정리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