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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자칼럼] 어플루엔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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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약중독자들은 대개 몇 단계를 거친다고 한다. 처음엔 피곤함과 배고픔을 잊기 위해 암페타민 같은 각성제를 먹다 차츰 기분을 들뜨게 하는 엑스타시에 빠지고, 다음엔 코카인과 현실을 잊게 하는 LSD에 이어 헤로인에 말려든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판단력과 자긍심을 상실, 거짓말을 일삼고 남의 눈을 아랑곳하지 않게 된다는 보고다. 소비중독의 과정도 비슷하다고 한다. 처음엔 기분전환 정도로 시작하지만 점차 남보다 먼저 신제품을 써보고 싶고 안 사면 견딜 수 없게 돼 결국 가정파괴와 개인파산 등 헤어날 수 없는 단계에 이르는 게 마약중독이나 다름 없다는 진단이다. 이같은 소비중독은 다름 아닌 '어플루엔자(Affluenza)'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어플루엔자란 '풍부한'이라는 뜻의 'Affluent'와 인플루엔자(Influenza)의 합성어다. 원래는 막대한 상속을 받은 여성이 무력감 권태 자책감에 시달리는 증상을 뜻하는 단어지만 아동심리학자 레비(John Levy) 박사에 의해 잘 사는 집에서 자란 아이들이 돈에 집착하고 매사에 쉽게 싫증내는 증후군으로 명명되기도 했다. 그러던게 미국의 존 더 그라프가 펴낸 '어플루엔자'에 의해 '과소비중독 바이러스'라는 의미로 확대된 것이다. 그라프는 미국을 비롯한 전세계가 심각한 소비중독바이러스, 즉 어플루엔자에 감염돼 있다고 진단했다. 역사상 최대의 풍요를 누리고 있으면서도 더 좋고 더 새로운 것을 더 많이 갖느라 과중한 업무 빚 근심에 시달린다는 지적이다. 미국과 유럽연합(EU) 회원국 국민의 8%가 심각한 쇼핑중독증에 걸려 있다는 통계도 있다. 우리도 예외라고 보기 어렵다. 사회정신건강연구소의 조사 결과 물건을 안 사면 불안한 사람이 성인의 6.6%고, 홈쇼핑 이용자 중엔 판매상품 대부분을 주문한 뒤 취소.반품을 되풀이하거나 하루 1천만원 이상의 주문을 내는 사람도 있다고 할 정도다. 과소비는 일종의 질병으로 여겨진다. 제약회사가 치료제를 만든다지만 약으로 해결될 문제는 아니다. 그라프는 소비중독의 해독제는 정신적 가치 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박성희 논설위원 psh77@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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