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 주변을 공포로 몰아넣고 있는 연쇄 저격사건에 미국 언론 보도가 집중되면서 2주 앞으로 다가온 중간선거와 북한 핵문제 등 대형 뉴스들 조차 파묻혀 실종되고 있다고 BBC 인터넷판이 23일 보도했다. 시청자들을 붙잡아두기 위해 별 의미도 없는 일을 뉴스라고 보도하거나 아무런변화도 없는 상황을 생중계하는 전파낭비, 어디서 터질지 모르는 다음 사건을 취재하기 위해 보도진이 곳곳에 진을 치고 기다리는 인력낭비는 기본이고 심지어는 무분별한 취재열기로 사건 현장을 훼손하는 등 언론이 수사에 차질을 빚을 정도의 과잉 경쟁을 벌이고 있다는 것이다. 폭스 뉴스는 "저격범 수사본부를 생방송으로 보여주겠다"며 발표자도 없는 단상과 늘어선 마이크들만 한동안 보여주는가 하면 CNN은 뉴스마다 주제가와 그래픽을 곁들이고 불길한 북소리를 배경으로 연쇄저격과 관련된 것이라면 경중을 따지지 않고 '융단보도'하고 있다. MSNBC는 "조준경에 잡히다"라는 살벌한 주제와 그래픽이 동원된 뉴스쇼에 영화`엑소시스트'의 소름끼치는 효과음을 삽입해 온갖 귀신들이 나와 돌아다닌다는 핼로윈을 앞둔 분위기마저 자아내고 있다. 24시간 뉴스 채널인 CNN도 핼로윈 특집으로 22일 밤 연쇄살인마들의 범죄를 되짚어 보도하면서 몇 주 전까지만 해도 피할수 없는 전쟁으로 묘사되던 이라크 관련보도가 뒷전으로 밀리기 시작했다. 이 방송은 사설 탐정들과 전직 연방수사국(FBI) 인물기록 담당자, 과거 연쇄살인사건 전담 수사를 맡았던 경찰관들을 대거 동원해 수시로 논평을 인용하고 있다. 심지어 폭스 뉴스는 뉴욕 연쇄살인사건의 범인 `샘의 아들' 데이비드 버코위츠에게 편지를 써 워싱턴 저격범 검거를 도와달라고 요청하기까지 했으며 MSNBC의 뉴스진행자 패트 뷰캐넌은 찰스 무스 몽고메리 카운티 경찰서장의 기자회견 장면을 보여주면서 그의 몸짓언어까지 분석하는 과잉서비스를 제공했다. 이에 대해 워싱턴 포스트의 미디어 비평가 하워드 커츠는 "틀릴 수도 있는 말이이처럼 난무한 적은 없었다"고 개탄했다. 이같은 언론의 과당경쟁으로 언론과 경찰 사이에도 긴장이 감돌고 있다. 무스 서장이 최근 기자회견을 하는 중에 한 기자가 10번째 사망자가 타고 있던버스에 기자들이 들어간 것을 놓고 경찰의 책임을 따지자 무스 서장은 "우리는 해야할 일에만 전념할 수 있게 보도진을 막을 인력이 없다"고 답변했다. 지금까지 저격사건이 일어났던 현장에는 예외없이 보도진이 진을 치고 있으며수사관들이 다음 표적이 될 만한 곳을 찾아 사람들의 접근을 막는 등 조치를 취하는곳에도 으레 수사진보다는 보도진의 숫자가 많아 커츠의 말에 따르면 "노르망디 해변을 덮은 연합군을 방불케 할" 정도이다. 워싱턴 일원의 주차장에는 TV 방송 중계차들이 언제라도 다음 현장으로 출동할수 있도록 대기태세를 갖추고 있으며 이같은 소란은 범인이 붙잡힐 때까지 가라앉지않을 전망이다. (서울=연합뉴스) youngnim@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