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일본의 한 유력신문에는 눈길을 끌 만한 두가지의 기사가 나란히 실렸다. 하나는 북·일 정상회담에 대한 여론조사 결과요,다른 하나는 22일 밤 베이징에서 열린 중·일 수교 30주년 기념행사 소식이었다. 신문은 '고이즈미 내각이 북·일 국교정상화 교섭재개에 합의한 것이 타당하다'고 보는 응답이 54%로 절반을 넘어, '합의하지 말았어야 했다'고 반대한 의견 9%를 크게 앞질렀다고 밝혔다. 40%대에 머무르던 고이즈미 내각의 지지율도 회담을 계기로 67%로 급상승했다고 덧붙였다. 사상 초유의 북·일 정상회담 결과에 대해 일본인들도 내심 만족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방증이었다. 하지만 조사 결과와 달리 대다수 일본 언론에는 북·일 수교교섭의 앞날을 낙관하기 어렵게 만드는 소식이 흘러 넘쳤다. 언론은 분노하는 납치피해자 가족들의 탄식과 애달픈 사연을 회담 후 수일이 지나도록 끊임없이 단골 메뉴로 올렸다. 정부 소식통은 소식통대로 배상을 요구할 것이라느니,정확한 규명이 전제되지 않는 한 수교협상은 지연될 수밖에 없다는 말을 쉼없이 흘리며 맞장구를 쳤다. 수교협상은 합의대로 진행될 것이라고 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에서 다짐한 고이즈미 총리의 체면을 무색케 하는 보도와 발언이었다. 신문은 한편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기념행사에 무려 1만3천여명의 일본인이 참석했으며 국회의원만도 85명이나 얼굴을 내밀어 마치 국회를 옮겨다 놓은 것 같다는 소식을 상세히 취급했다. 기념행사에는 고위 각료와 원로기업인,인기연예인들도 대거 몰려가 '우호'와 '공동번영'을 노래했다고 신문은 덧붙였다. 야스쿠니신사 참배와 중국 공안의 선양 일본총영사관 진입 등 크고 작은 사건으로 대립각을 세워 온 것이 '언제 그랬느냐'는 듯한 기사였다. 일본인들의 국민적 특성 중 하나로 본심(혼네)과 의례적 수사(다테마에)가 혼재해 있다는 것을 꼽는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23일 뉴스는 술수와 줄다리기가 판치는 국제정치·외교 무대에서 혼네와 다테마에로 무장한 일본의 속셈과 기질을 그대로 보여 준 거울이었다. 도쿄=양승득 특파원 yangs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