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을 빠져나가 송추계곡 입구를 지나면 곧 원각사로 들어가는 길목이다. 산사로 향하는 길이 고즈넉하리라는 기대는 여기서부터 여지없이 깨진다. 입구에서 5분쯤 들어가면 길을 내기 위해 산을 파헤친 자국이 눈앞을 가로막는다. 사패산 매표소 앞과 냇물 건너편 산등성이에는 '뭇 생명의 터전을 허물지 말라'는 등의 구호를 담은 현수막과 철조망,천막,가건물들이 자못 긴장감을 자아낼 정도다. 이곳이 수경 스님(53·불교환경연대 대표)의 수행처다. 일산~퇴계원간의 서울외곽순환도로를 내면서 북한산 국립공원에 4㎞의 관통터널을 뚫는다는 사실을 알고 이를 저지하기 위해 터널 입구가 될 이곳에서 농성을 겸해 정진중이다. 지난 25일 오후 '북한산 살리기 정진도량 천하제일문'이라 쓴 일주문을 지나 냇물을 가로지르는 나무다리를 건너자 선방에서 정진중이던 수경 스님이 반갑게 맞았다. "북한산은 연간 1천만명 이상이 찾는 휴식처입니다. 그런데 이곳에 길이 4㎞ 폭 40m의 터널을 뚫는다고 합니다. 국립공원에 이런 길을 내겠다는 건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일이죠.북한산뿐 아니라 수락산 불암산도 관통하게 됩니다. 이 구간에는 망월사 회룡사 등 32개 고찰들이 있어 수행 환경이 훼손되는 것은 물론 대기오염,지하수 고갈,생태계 파괴 등 비극적인 결과를 초래할 것입니다." 그래서 수경 스님은 "지금이라도 공사를 중단하고 대안노선 검토위원회를 구성해 충분히 논의한 뒤 환경을 살리면서 개발하는 친환경적 정책을 모색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산도 살리고 시민들의 편의도 증진시키는 지혜를 모아야 한다는 얘기다. "오늘날 이런 일이 생기게 된 것은 그동안 스님들이 제 역할을 못한 데에도 책임이 있습니다. 산은 스님들의 집인데 절에서 오히려 산에다 길을 내고 파괴하는 경우가 많았거든요. 불교계 특히 스님들의 뼈아픈 자기반성이 있어야 해요. 이제는 산에 사는 스님들이 제 역할을 하면서 모범을 보이는 실천운동에 앞장서야 합니다." 30년 이상 선방에서 깨달음을 구하던 수경 스님이 세상으로 얼굴을 내민 것은 2년 전 지리산 실상사 주지인 도법 스님의 요청으로 지리산 댐 건설 반대운동에 동참하면서다. 그때 도법 스님은 "흙을 한 삽만 퍼도 무수한 생명이 죽는데 지리산에 댐이 생기면 얼마나 많은 생명이 다치겠느냐"고 했다고 한다. 그렇다고 수경 스님이 수좌로서의 할 일을 놓은 것은 아니다. 그는 이곳 농성장 가건물에 '철마선원(鐵磨禪院)'을 세워 7∼8명의 대중들과 함께 하안거(夏安居) 정진중이다. 철마선원은 쇠를 단련하듯 마음을 닦는다는 뜻. 매월 첫째 토요일에는 '북한산 살리기 3천배 철야기도'를 올리고 있다. '선(禪)은 선방에만 있는 게 아니라 수행자가 수행하는 모든 곳이 선방'이라는 생각에서다. 수경 스님은 조계종이 26일 오후 2시 서울 조계사에서 연 '북한산 국립공원 파괴행위 규탄 범불교도대회'에는 참석하지 않았다. "현장을 지키는 게 내가 할 일"이라고 했다. "모든 것은 시절 인연에 따라 이뤄지는 것이며 나는 그저 최선을 다할 뿐"이라며 산을 바라보는 수경 스님의 눈에 북한산이 담겼다. 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