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가해자는 언제나 가족이다.


믿는 도끼'만'이 으레 발등을 찍는다.


그 환부는 욱신거릴 테지만 상처는 외면할수록 덧난다.


유일한 치유책은 추한 상흔에 정면 대처하는 길이다.


'개같은 내인생'으로 유명한 라세 할스트롬 감독의 신작 '쉬핑뉴스'는 혐오스런 가족사와 맞대결함으로써 불행의 연쇄고리를 끊으려는 사람들의 분투기다.


인정하는 것이야말로 변화의 첫걸음이란 믿음이 전편에 깔려 있다.


올 베를린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했던 이 작품에는 '아메리칸뷰티'의 케빈 스페이시,'매그놀리아'의 줄리안 무어,'엘리자베스'의 케이트 블랑쳇, '아이리스'의 주디 덴치 등 개성적인 배우들이 출연한다.


캐릭터들의 중심은 케빈 스페이시가 맡은 코일역.


지극히 소극적인 그는 첫 만남에서 섹스관계를 갖고 결혼을 제의해 온 아내 페탈(케이트 블랑쳇)과의 사이에 딸이 있다.


페탈은 노골적인 외도끝에 결국 딸을 팔고 도망치다가 사고로 죽는다.


딸은 경찰의 도움으로 아빠에게 되돌아 온다.


충격적인 현실에 망연자실한 코일은 고모 아그니스(주디 덴치)와 함께 고향 포틀랜드의 코일포인트로 귀향한다.


과거에 묶인 영혼들에게 자유를 주려는 의식들이 이어진다.


첫 걸음은 아픈 과거를 확인하는 작업이다.


아내의 불륜을 방치했던 코일의 무기력증은 아버지의 억압과 학대에서 비롯됐다.


그러나 아버지는 코일의 생존법을 가혹한 방식으로 가르친 것이다.


아그니스는 어린시절 코일의 아버지이자 자신의 오빠로부터 어린시절 강간당한 뼈아픈 경험이 있다.


그녀는 50여년이 지난 이제서야 당시의 공포를 떨쳐 버리려 귀향한 것이다.


또 코일의 딸은 엄마가 '자신을 보기가 지겨워' 집을 나간 것으로 오해한다.


상처의 연쇄고리가 형성된 것이다.


코일은 고향에서 자신의 조상들이 해적질로 숱한 인명을 살상했음을 알게 된다.


그의 새연인 웨이비(줄리안 무어)는 난봉꾼 남편에게서 버림받았다.


두 사람은 아픈 내력에 대해 '고해성사'를 함으로써 서로를 받아들인다.


코일이 서서히 자신감을 찾아가는 과정에는 신문사 인쇄공에서 '선박뉴스'를 전하는 기자직으로의 신분변화가 디딤돌역할을 한다.


이런 줄거리는 바다를 배경으로 한 장대한 풍광과 풍부한 물의 이미지들로 이정표을 삼고 있다.


물을 두려워하는 코일은 물에 빠지는 시련을 통해 아픈 과거를 극복한다.


그가 고향마을의 주수입원인 유조선에 대한 비판기사를 쓰는 것도 '상처응시' 수순의 일환이다.


폭풍이 옛집을 파괴시키는 마지막 장면은 은유적이다.


고통은 폭풍처럼 힘겹지만 그 폭풍을 이겨내야 상처(옛집)를 없애는 유일한 방법임을 전하는 대목이다.


폭풍과 바다,물 등은 '블루'색채로 우울한 정서를 담아낸다.


그 이미지들은 지나치게 거칠고 강렬한 탓에 관객들이 치유의 따스함을 느낄 기회를 앗아갔다.


배우의 유명세에 어울리지 않게 캐릭터들은 단면을 부각시키는데 그쳤다.


케빈 스페이시의 코일역은 불운의 고뇌가 그리 깊지 않다.


줄리안 무어는 자식에 대한 헌신적인 모성을 연기하지만 거기에는 푸근함이 부족하다.


케이트 블랑쳇은 악마적인 요부 페탈역을 '난폭자'로 규정하는데 머물렀다.


24일 개봉.


18세 이상.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