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노무현 후보는 과연 시장경제(market economy)의 신봉자인가. 이런 의문을 제기하는 보수층 인사가 결코 없지만도 않은게 사실이다.그의 과거 언행이 빚어낸 후유증임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그러나 그런저런 단편적인 말만으로 그를 반(反)시장주의자로 단정하는 건 온당치 않다. 문제된 말에 대해 그 스스로 지금은 그렇지 않다고 해명하기도 했지만,설혹 그것이 그의 바뀔 수 없는 철학이라고 하더라도 그러하다. 특정 후보를 시장경제 신봉자냐 아니냐 따지는 것은 한마디로 약간은 우습다. 시장경제로 불리는 것의 스펙트럼이 너무나 다양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런 '접근'은 무의미하기도 하다. 정부간섭이 전적으로 배제된 엄격한 의미에서의 시장경제는 오늘날 어느 나라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지금 시장경제로 불리는 것의 실체는 교과서적으로 말하면 혼합경제(mixed economy)이거나 이른바 간섭주의(interventionism)에 해당한다고 보는 것이 옳다. 바로 그런 점에서 노 후보의 경제정책도 그가 시장경제 신봉자냐 아니냐는 명목적인 관점에서가 아니라 현실적합성이라는 측면에서 검증할 필요가 있다. 그의 경제정책은 아직 방향과 구호만 있을 뿐 구체적인 수단이 제시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공허한 감이 있다. '분배 없이는 성장도 없다'는 등의 표현은 슬로건일 수는 있겠지만 정책으로서의 필요충분조건을 갖췄다고 할 수는 없다. 문제는 분배,곧 복지확대를 위해 어떻게 재원을 조달하느냐다. 설득력있는 재정확보 수단을 제시하지 못하는 한 복지확대론은 한마디로 포퓰리즘에 불과하다. IMF 이후 확대된 빈부격차를 해소하고 사회통합을 이뤄나가겠다는 말만 할 것이 아니라 그렇게 하기 위해 필요한 재원은 어느 정도고 어떻게 더 걷을 것인지를 분명히 밝혀야 한다. 친기업적이라는 이회창 후보 경제정책도 따지고보면 마찬가지다. 어디로 가겠다는 것인지 방향 자체도 불분명한 감조차 없지 않다. "기초생활 보장제는 지금보다 더 확대할 수 있다" "세금구조를 더 누진적으로 바꿔 세금이 소득재분배 기능을 하도록 해야 한다"는 등의 발언만 해도 그렇다. '활기찬 경제'와 '따뜻한 복지'를 동시에 강조하는 것은 선거전략상 불가피할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혼란스러운 느낌은 떨쳐버리기 어렵다. 정당의 색깔은 두말할 것도 없이 시장에서의 정부역할을 어디까지로 보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보다 광범위한 복지정책=큰 정부=증세(增稅)는 당연히 진보적인 컬러를 띠는 정당의 강령이게 마련이고,반대로 보수적인 정당은 감세정책을 들고 나오는 게 정형화돼 있다. 미국 공화당의 단골메뉴가 감세정책인 것도 바로 그래서라고 볼 수 있다. 거시경제 정책수단들이 약간은 다 그런 측면이 있지만,특히 세제는 패션이다. 글로벌경제시대이고 보면 특정국가만 '유행'에 아랑곳하지 않고 고세율을 고집한다면 투자가 외면하게 되는 때문일까. 어쨌든 각국의 세제개편 방향은 대체로 통한다. 부가가치세 중심의 간접세 의존이 높아지고 있고 소득세 최고세율이 낮아지는 것은 물론 누진단계도 축소되는 경향이다. "간접세는 소득역진적이므로 그 비중을 낮춰나가야 한다" "소득세는 부담능력에 맞게 누진구조여야 한다"는 등의 옛 교과서적 이론은 그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과는 별개로 한물 간 것 같은 추세다. 미국의 경우 상속세를 없애자는 논의도 활발하다. 클린턴의 거부권행사로 일단 유보되기는 했지만 상속세가 폐지될 날도 멀지만은 않은 것 같다. 한마디로 자산소득 중과세를 통한 증세정책은 낡은 사고처럼 여겨지고 있다. 자산이 절약과 저축의 결과이므로 그것에 대해 중과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주장이 과연 타당한지는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어쨌든 그것이 세제에 대한 세계적인 물결인 것만은 분명하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대처하는 것이 옳을까. 이 역시 국민 전체가 판단해야 할 문제인 만큼 어느 쪽이 옳다 그르다고 여기서 단정해야 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그러나 한가지 분명한 것은 있다. 책임있는 대통령 후보라면 복지를 말하기 전에 세금을 말해야 한다는 것이다. 복지와 세금이 동전의 앞·뒷면 관계라는 점을 감안하면 특히 그러하다. /본사 논설주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