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좌승희 한국경제연구원장이 정치인들을 "가장 불행한 사람들"이라고 표현한 적이 있다.


아무리 참신한 정치신인이라도 배지를 다는 순간부터 자의든 타의든 기성 정치권의 부패문화에 물들 수밖에 없다는 이유에서다.


좌 원장은 '다선의원=보다 부패한 정치인'의 등식이 성립한다면서 국회의사당을 "부패정치인을 만들어 내는 생산공장"이라고 혹평했다.


정치판의 희생양 가운데서도 민주당 김근태 정동영 상임고문의 경우는 아마 최악의 케이스로 꼽힐 듯하다.


정치자금에 관한한 깨끗하기로 소문난 이들이 하필이면 권노갑 전 고문과의 악연으로 검찰에 소환될 위기에 놓였기 때문이다.


특히 불법자금을 '고해성사'한 김 고문은 "혼자 깨끗한 척한다"며 당원들로부터 '왕따' 당해 대선후보 경선에서도 좋지 못한 득표율을 기록하는 수모까지 겪어야 했다.


정풍운동과 국민경선제 등을 주도하며 낡은 정치형태에 온몸으로 맞서온 이들의 공(功)은 평가받기 어렵게 됐다.


이를 안타깝게 지켜보던 동료의원들이 마침내 구명운동에 나섰다.


신기남 허운나 김윤식 임종석 의원 등 민주당 의원 15명은 성명서를 내고 "검찰은 소환방침을 철회하라"고 촉구했다.


장영달 의원은 의원총회에서 "이런 식으로 검찰이 오라는 대로 다 가다가는 이 자리에 몇사람이 남겠는가"라고 불만을 털어놓으며 당차원의 특별대책을 주문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돈없이는 정치하는게 불가능하다.서양에서도 정치자금을 '정치의 모유'(mother's milk of politics)라며 민주주의의 당연한 비용으로 여긴다.


일본에선 자기 주머니를 털어 정치하는 사람을 '정호(丁戶) 정치인'(우물과 담장만 남은 정치인)이라며 아예 무능력자 취급을 한다.


그러나 악법도 법이다.


검찰의 기소권에 대해 정치권이 이러쿵저러쿵 간여하는 모양새가 썩 좋아 보이지는 않는다.


교도소와 국회 사이의 담장 위를 걷는 동료의원들이 모습이 정 불안해 보인다면 관련법을 현실화하든지 그것이 불가능하다면 고비용 정치구조를 뜯어고치는 자정노력부터 하는게 순서가 아닐까.


김병일 정치부 기자 kb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