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게 늘어뜨린 고수머리, 정면을 응시하는 두눈동자, 신앙적 경건성에 속세의 소심성이 살짝 내비치는 얼굴표정... 15세기와 16세기를 풍미한 알브레히트 뒤러(1471-1528)는 자화상으로 널리 알려진 화가다. 괴테가 독일문학을 대표한다면 뒤러는 독일미술을 상징한다. 또 네덜란드와 벨기에가 렘브란트와 루벤스를 각각 내세운다면 독일은 망설이지 않고 뒤러를첫 손가락으로 꼽는다. 20세기 미술사의 이론과 방법론을 확립한 하인리히 뵐플린(1864-1945)이 1905년에 쓴 「알브레히트 뒤러의 예술」은 이 독일미술의 제왕을 샅샅이 뒤진 인문학적평전이다. 뵐플린은 종교개혁을 전후해 새로운 인간유형을 창조했던 뒤러의 삶과 예술을 날카롭게 분석했다. 그는 제1판 서문에서 "1천200여점에 이르는 뒤러의 소묘와판화, 유화를 '인간적인' 방식으로 설명하려 했다"고 기술한 바 있다. 뒤러는 자화상을 중심으로 국내에 그동안 단편적으로 알려져왔다. 거장치고는뜻밖에 낯설었던 셈. 독일 뒤셀도르프 대학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은 이기숙씨는뵐플린의 뒤러 평전을 번역해 한국 독자의 이해를 돕고자 했다. 최근 출간된 「뒤러의 예술」(한명출판)이 그것이다. 이 단행본은 등 148점의색도판과 판화도판을 실어 뒤러의 예술적 발자취를 더듬게 한다. 도 13살때 그린 1484년작에서부터 1493년작, 1498년작, 1500년작 등 차례로 게재돼 그의 예술적 호기심과 영감을 짐작하게 하고, 아버지와 어머니의 초상도 감상하게 했다. 뉘른베르크에서 가난한 금세공사의 아들로 태어난 뒤러는 "눈은 인간이 지닌 가장 고귀한 감각이다"는 지론을 갖고 있었다. 그 예리하고 감성 풍부한 눈으로 그리스도의 수난과 마리아의 생애, 묵시록같은 기독교 신앙을 유화와 세필 드로잉 등으로 표현했다. 때가 때였던 만큼 그는 전통적 독일 양식인 후기 고딕에서 이탈리아의 르네상스미술 사이를 넘나들며 예술적 지평을 넓혔다. 특히 기독교계를 뒤흔든 종교개혁의물결은 그가 신앙과 인간을 새롭게 들여다보게 하는 계기가 됐다. 1500년에 그린 자화상은 "내가 바로 뒤러다"라고 선언하는 듯 자신만만한 모습이다. 독일 미술품 가운데 가장 잘 알려진 동판화 는 삶의 치열성을 한폭의 세밀화로 엮어내 독일인들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다. 이는 독일인들이집에 가장 즐겨 거는 작품으로 꼽히기도 한다. 유화 는 뒤러 특유의직관과 통찰력이 느껴지고, 목판화 은 뒤러가 평생 관철했던 주제의식을 엿보게 한다. 옮긴이는 "독일미술의 새로운 장을 연 뒤러는 위대한 미술가로 불려 마땅하나미술적 성취를 얻기까지 극복해야 했던 삶의 행로가 더 위대할지도 모른다"면서 "그는 손재주로 먹고 사는 기능인을 벗어나 독자적 예술성을 인식하고 남에게 당당히내보이는 작가였다"고 말한다. 374쪽. 2만5천원. (서울=연합뉴스) 임형두 기자 ido@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