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오후 4시. 여의도 한 증권사 리서치센터 회의실. 박 모 시황분석팀장은 고개를 떨군채 한숨만 짓고 있다. 행여 담당이사가 시장전망을 물어올까 조마조마할 따름이다. 이날 오전 조심스럽게 조정전망을 내놨건만 시장은 급반등으로 엇박자를 냈다. 반면 기업분석팀 애널리스트들은 표정관리에 여념이 없다. 특정종목을 추천하면 주가는 곧바로 꿈틀댄다. 이들의 손길이 스치기만 하면 고개 숙인 주가에 새싹이 돋는다. 1,2개월마다 목표치를 수정하느라 몸이 둘이라도 모자랄 판이다. '난장판(難場判)'이다. 최근 증권시장을 판단하기 쉽지 않다는 얘기다. 6개월 연속 양봉이 확실시될 정도로 예상을 뛰어넘는 상승가도를 달려온 최근 증시에 대한 전문가들의 고백이기도 하다. 논리적 근거로 무장한채 수년간 시장을 지탱했다고 자부하는 시황전문가들의 입지가 갈수록 좁아지는 형국이다. 반면 기업분석팀 애널리스트들은 신바람이 났다. 한 집안(증권사)에서 시황전문가와 애널리스트들의 희비가 극명하게 엇갈리고 있다. 시황전문가(Strategist)는 거시경제 분석 등을 통해 주가를 예측하는 일을 담당하며, 애널리스트(Analyst)는 특정 업종이나 종목을 전문적으로 분석한다. ◇ '휴' =이날 오후 2시 넘어 지수가 급반등, 900선을 뚫고 올라가자 각 증권사 시황전문가들의 안색은 파랗게 질렸다. 주가가 오르는 것을 마다할 일은 아니지만 속내는 다르다. 최근 강세장에서 전망이 제대로 들어맞은 적이 없는데 대한 자괴감만이 묻어날 뿐이다. 주가의 향방은 '신의 영역'이라며 자위해 보지만 마음은 꺼림칙하다. 사실 지난 2월26일 800선을 돌파한 뒤에도 내로라하는 증권사 시황전문가들은 이구동성으로 "3월 한달동안 기간조정을 거칠 것이고 고점은 840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었다. 경기회복에 대한 기대감은 이미 주가에 반영됐고 미국시장의 움직임도 안심하기 일러 단기급등에 따른 조정론에 베팅을 한 셈이다. 하지만 지수는 장중조정을 거치며 상승일로다. 지수는 지난 6일 840을 넘어 19일에는 장중 890선을 돌파했다. 탄력이 붙은 지수는 900선 고지 점령을 연일 시도하고 있다. 한 증권사 시황담당자는 "과거 상승장과는 다른 점을 간과한게 실수였다"며 "단순히 단기급등 이후 조정이라는 공식은 버릴때"라고 고백했다. ◇ '아싸' =애널리스트들의 어깨가 들썩인다. 장중에도 여기저기서 환호성이 터져나온다. 요즘 추천한 종목이 증권사 일일보고서(속칭 데일리)에 실리기만 하면 얼마 지나지 않아 1백% 상승으로 이어지는 일이 부지기수로 벌어지기 때문. 같은 층을 쓰는 시황팀 직원의 표정을 살필 정도다. 애널리스트들 사이에 추천종목이 한달새 50%이상 수익률이 나는 건 어디가서 얘기하기도 쑥스러울 정도다. '더블'은 나야 '제대로 골랐다'는 칭찬을 기대할 수 있다. 애널리스트들의 '신화'는 계속되고 있다. 조정분위기가 역력하지만 이들의 '약발'은 여전하다. 이번주 대신 대우 신영 현대 LG증권 등 6개 증권사가 추천한 종목의 절반이상이 20% 넘는 수익률을 기록했다. 이 가운데 LG마이크론(대우), 대구은행(동원), 삼성전기 테크노쎄미컴 삼성전자우 대한해운(이상 LG), 동서정보기술(현대), 디지아이(대신), 한섬(신영) 등 9개 종목은 추천 이후 50% 넘게 올랐다. 특히 LG투자증권이 지난 1월14일 추천한 대한해운은 2배 넘게 급상승하기도 했다. 김동민 기자 gmkd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