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魯馨 < 고려대 교수 / 통상법연구센터 소장 >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철강제품에 대한 세이프가드조치로서 8∼30%의 관세를 부과하기로 발표했다. 이러한 결정에 대해 유럽연합(EU) 일본 중국과 러시아는 물론 한국도 즉각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하는 등 강경대응 방침을 밝히고 있어 세계적인 무역전쟁의 조짐이 감돌고 있다. 부시 대통령이 미국무역위원회(ITC)의 건의에 따라 결정한 세이프가드조치 수준은 미국 철강업계가 바라던 40%의 수준보다는 낮지만,미국 역사상 가장 포괄적인 무역보호조치로서 기록될 정도로 엄청난 내용이다. 미국 세이프가드조치 대상에 열연강판 냉연강판 강관 스테인리스와이어 등 주력 수출품목이 대부분 포함된 한국의 경우 대미 철강수출이 크게 제한될 것으로 우려된다. 미국의 세이프가드조치는 1차적으로는 미국의 철강산업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지만,금년 11월 하원의원 선거에서 철강생산의 근거지인 펜실베이니아와 오하이오주 등에서 공화당의 지지 기반을 확보하려는 부시 대통령의 정치적 목적을 가진 것으로 보인다. 또 WTO 도하라운드 등의 무역협상을 수행하기 위해 미 행정부는 의회로부터 권한수임이 필요한데,상원에서 계류 중인 소위 '무역촉진권한'의 조속한 확보를 염두에 둔 것으로도 보인다. 그러나 미국의 세이프가드조치는 국제관계에서는 물론 미국 내에서도 큰 문제를 야기할 것으로 보인다. 우선 세이프가드조치를 통해 미국 철강업계가 인위적인 보호를 받지만,철강을 많이 사용하는 자동차 등 산업은 피해를 보게 된다. 둘째,세이프가드조치를 통해 대미수출이 제한된 철강제품은 다른 국가로 수출될 수밖에 없어 철강무역에 있어 수입제한의 도미노 현상이 발생할 것으로 우려된다. 특히 EU는 미국의 세이프가드조치로 미국시장을 상실하면서 동시에 다른 철강수출국의 철강이 자신에게 집중되어 자신의 철강산업이 피해를 보게 될 가능성을 크게 우려하고 있다. 세이프가드조치는 WTO규범에 따라 정상적으로 수입된 상품의 물량이 급속히 증가해 수입국 국내산업이 심각한 피해를 본 경우 한시적으로 허용되는 수입제한조치다. 따라서 미국의 세이프가드조치는 '심각한 피해'의 존재 등에 있어 WTO규범에 따라 정당성이 인정돼야 한다. 미국 철강업계는 1998년 이후 31개의 크고 작은 철강기업이 파산절차를 밟고 있는 이유가 수입철강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EU와 한국 등은 대미 철강수출 물량이 지난 3년 동안 감소하고 있기 때문에 미국 철강산업의 피해는 철강수입과는 관련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러한 확연한 입장 차이 때문에 미국의 세이프가드조치에 대해 EU와 한국 등이 즉각 WTO에 제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미국과 함께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의 당사국인 캐나다와 멕시코가 세이프가드조치의 대상에서 제외되고 있는데,이러한 선별적 적용의 WTO법상 정당성도 다투어질 수 있다. 이번 미국의 세이프가드조치는 미국의 통상정책이 자국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해외시장 개방을 내용으로 하는 자유무역주의를 포기한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 그러나 부시 대통령의 세이프가드조치는 수입철강에 의존하는 자동차 등 다른 미국산업의 경쟁력을 훼손시키고 또 한국 등 우방과의 통상전쟁을 촉발하는 우를 범한 것으로 평가된다. 결국 한국이 미국의 세이프가드조치를 WTO법의 위반을 이유로 제소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선택이다. WTO 분쟁해결에 있어 긍정적인 점은 최근 들어 미국의 일련의 세이프가드조치 및 철강관련 조치가 WTO규범에 위반한다고 판정되는 사실이다. 그러나 WTO에서의 분쟁해결에 2∼3년의 시간이 소요되는 점에서 단순히 WTO에서 분쟁이 해결되는 것만을 기다리고 있을 수는 없다. 또 미국시장에 크게 의존하고 있는 한국으로서는 미국과의 양자적 관계에서 큰 목소리를 낼 형편도 아니다. 따라서 한국은 WTO 내외에서 EU와 일본,특히 중국과 연계해 적극 대응하는 방안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 wtopark21@hotmail.com .............................................................. ◇이 글의 내용은 한경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