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앨런 그린스펀 의장. 그의 말 한마디에 세계 경제는 순식간에 요동을 친다. 그린스펀이 입을 열면 세계가 귀를 쫑긋 세운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다. 미국 행정부의 금융정책뿐만 아니라 증권시장 등 실물경제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는 '무서운 입'. 그래서 그는 '미국의 제2인자'라고 불린다. '그린스펀,세계를 움직이는 그의 말(The Quotations of Chairman Greenspan)'(래리 카해너 지음,함형기 옮김,좋은책만들기,1만2천원)은 그린스펀 의장이 언제 어떤 상황에서 무슨 말을 했는지를 분석하고 이를 통해 앞으로 그의 발언을 어떤 각도에서 해석해야 하는지를 알게 해주는 책이다. 지난 70년대 말부터 최근까지 여러 공식 장소에서 한 말을 발췌해서 묶었다. 그는 언론과 개인적인 인터뷰를 일절 하지 않는다. 그런 탓에 그의 공개 연설문과 의회 증언,의회에서 있었던 질의와 답변 기록,그가 일반 대중과 가졌던 즉석 대화 등은 가장 중요한 자료가 된다. 경영 컨설턴트인 저자는 그의 말이 어떤 맥락에서 나왔는지를 독자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인용문 뒤에 그가 말한 장소와 상황 날짜 등을 상세히 설명해 놓았다. 책에는 그린스펀의 신중하고도 위력적인 발언들이 은행자본주의와 경쟁,국가 채무와 재정 적자,파생금융상품,인플레이션,신경제,주식시장,무역 등 24개 분야로 나뉘어 정리돼 있다. 얼마 전 그가 '경기 회복국면 진입'이라고 진단한 뒤 세계 증시는 힘찬 반등을 보였고 지난 96년말에는 주식시장을 '비이성적으로 법석을 떠는 곳'이라고 한 그의 지적에 증시가 대폭락을 맞았다. 그린스펀은 레이건 클린턴 등 역대 대통령들에 의해 임기 4년의 FRB 의장직에 네번째 임명됐으며 지금도 2년여의 임기를 남겨두고 있다. 그는 70년대 미국 외교의 조타수였던 헨리 키신저와 조지 워싱턴 고등학교에서 함께 공부한 76세의 고령이다. 그런데도 날마다 새로운 경제 이론이 쏟아져 나오는 경제계에서 여전히 막강한 힘을 발휘하고 있다. 그의 성공에서 배울 수 있는 교훈은 많다. 이 책에는 '완벽한 정보력을 바탕으로 예측하고 판단''미리 준비하는 계획성''경제에 관해 단기적인 후퇴나 이탈에는 의연하게 대처하고 보다 큰 그림에 초점을 맞춘다' 등 12가지 '타산지석'이 요약돼 있다. 그가 고등학교 졸업 후 줄리아드 음악원에서 공부하면서 한 악단의 색서폰과 클라리넷 주자를 맡았을 정도의 음악도였던 사실,19세에 음악의 꿈을 접고 뉴욕대 경제학과로 진로를 바꿨던 일화,가난해서 박사 과정을 중단했던 사연 등도 재미있는 읽을거리다. 고두현 기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