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중기의 대표적 학자 남명(南冥) 조식(曺植.1501-1572)의 문집인「남명집」(南冥集)이 그의 탄생 500주년을 맞아 최근 도서출판 한길사의 학술시리즈인 '한길그레이트북스' 제52권으로 새롭게 번역돼 나왔다. 남명이 타계한 후 그의 제자들이 엮은 「남명집」은 1980년 이익성씨가 처음으로 한글 번역본을 냈으며, 이후 남명학 전문연구를 표방하는 경상대 남명학연구소가이 대학 한문학과 교수진 6명을 총투입해 지난 95년 국역본을 냈다. 이번에 새로 선을 보인 「남명집」은 95년 국역본을 다시 손질한 것이다. 이 국역본은 기존 번역을 많이 뜯어고친 것은 물론 의미전달이 명확하지 않은 구절은 바로잡았고 문체 또한 현대인이 이해하기 쉽도록 다듬었다. 오역은 고쳤고 미비한 주석은 보강했다. 이를 염두에 둔 듯 국역자의 한 명인 허권수 경상대 교수는 이번 「남명집」은 재판이 아니라 새로운 번역이라고 자신하고 있다. '행동하는 지식인'으로 일컬어지는 남명은 명성에 비해 많은 글을 남기지 않았다. 글보다는 지리산 오르내리기를 좋아했다. 정인홍(鄭仁弘)과 같은 과격 성향의 지식인이 그 문하에 배출될 수 있었던 것은 흔히 지적하듯 이런 행동지향적인 남명의 성격과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이 점은 동갑내기인 퇴계 이황과 비교해 뚜렷한 대조를 이룬다. 경북 안동을 근거지로 활동한 퇴계는 끝까지 출사를 거부한 남명과는 달리 수시로 중앙정부를 들락거렸다. 아울러 엄청난 분량의 글을 남겼다. 남명이 글을 많이 남기지 않은 데 대해 흔히 그가 행동지향적이었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이들이 있으나 이는 만족스런 설명이 될 수 없다. 행동지향적이라고 해서 글을 적게 쓰는 것도 아니고, 반대로 사변적이라고 해서 많이 쓰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어떻든 남명이 남긴 글은 크게 시(詩)와 문(文)을 모은 시문집과 일종의 독후감을 엮은 학기류편(學記類編)으로 나뉜다. 학기류는 정인홍이 다시 종류별로 분류한것이다. 남명 사후 32년만에 처음 나온 「남명집」은 이후 극심한 변개(變改)를 겪어야했다. 정인홍이 역모사건에 휘말려 처단되면서 문집에서 그와 관련되는 부분들은 삭제돼야 했기 때문이다. 현재까지 「남명집」은 17개 가량 되는 판본이 알려져 있으나 이번 국역본은 경북대 소장본인 이른바 '을유후판'(乙酉後版)을 저본으로 삼았다. (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taeshik@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