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 이는 자세히 설명할 필요도 없이 자본주의 경제발전의 근본원리다. 때문에 정부는 오래전부터 과감한 규제개혁을 통해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만들겠다고 공언해 왔다. 과연 우리나라의 기업환경은 예전에 비해 얼마나 좋아졌는가. 불행하게도 그에 대한 대답은 '아니오'임이 밝혀졌다. 본지가 창간(10월 12일) 37주년을 맞아 1백개 주요기업 최고경영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우리의 기업환경은 점수로 매긴다면 1백점 만점에 평균 40점에도 미달한다는 응답이 나온 것이다. 설문 응답자 가운데 절반이 훨씬 넘는 62명이 40점 미만이라고 답했고, 60점 이상을 준 최고경영자는 단 1명에 불과했다. 형편없는 낙제점을 받은 셈이다. 이 정도면 '차라리 나라 밖으로 나가 기업활동을 하고 싶다'는 하소연이 결코 빈말이 아님은 분명하다. 정부가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만들겠다고 그토록 강조했음에도 왜 이런 결과가 나온 것인가. 근본적으로 관치경제의 환상을 떨쳐버리지 못하는 정책기조 때문이라고 본다. 시장실패 또는 개혁을 빌미로 기업을 통제나 군림의 대상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대기업집단지정 제도를 고수하면서 없앴던 출자총액제한 제도까지 부활하는 어리석은 정책의 구사가 그 대표적인 사례다. 업종전문화를 내세운 빅딜이며,획일적인 부채비율규제 등도 따지고 보면 관치의 극치를 보여준 것들이다. 어디 그 뿐인가. 툭하면 조사를 벌여 기업인들을 부도덕한 집단으로 매도하는 사례도 적지않아 기업들이 기를 펴지 못하고 있음은 굳이 강조할 필요조차 없다. 더욱 한심스런 행태는 이번 기업규제완화 방안이라고 내놓은 공정위의 꼼수다. 출자총액한도는 폐지하되 기존한도를 초과하는 출자에 대해선 의결권을 박탈하겠다는 안은 사유재산권 침해라는 법리상의 문제를 논외로 하더라도 자본주의의 근간을 부정하는 것이다.은행법 개정안도 같은 논리를 펴고 있는데 그러한 정책발상이 핵심 정책부서에서 태연스럽게 제기됐다는 것 자체가 놀라울 뿐이다. 어느 나라가 법으로 기업들의 설비투자를 막고,기업조직이나 재무전략까지 간섭하는가. 정부가 개혁을 빌미로 한 그같은 초법적 조치들을 강조함으로써 국민들의 반기업 정서를 부추기고 있다는 사실은 더 큰 문제다. 지금이 어느 때인가. 정부 스스로 비상대책을 내놓고 있는 상황이라면 과감한 규제개혁을 통해 기업을 살려야 나라가 산다는 것쯤은 가르쳐주지 않아도 알만한 시점이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