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고전은 '경세제민(經世濟民)'과 '응대사령(應對辭令)'을 두 기둥으로 삼고 있다. 경세제민은 천하를 어떻게 다스려 나갈 것인가,나라를 어떻게 바로잡아 나갈 것인가 하는 것을 강구한 정치방법론이고 응대사령은 눈앞의 냉엄한 현실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성찰한 인간관계학이다. 중국 고전을 '인간학의 보고(寶庫)'라고 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중국고전이 과거 어느 시대에나 변함없이 사회의 지도자들에게 인간형성의 양식으로서 읽혀져 온 것이나 오늘날에도 필독서인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중국의 현 지도자중 장쩌민(江澤民)주석 만큼 고전을 중시하고 그 속에서 지혜를 찾아내 치국에 원용하려는 사람도 없을성 싶다. 올해초 열린 중앙선전공작회의에서 그가 수백명의 당원들에게 꼭 '중용'을 읽도록 권했다는 보도가 그것을 뒷받침해 주고 있다. 전통 선비집안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고전교육을 받은 그는 당나라 시인 왕발(王勃)의 '등왕각서'를 읊조리며 외국정상과의 대화의 폭을 넓힐 만큼 중국 고전에 조예가 깊다. 지난 4월 쿠바를 방문했을 때는 카스트로에게 칠언절구 자작시 한 편을 지어 선물했는가 하면 95년 한국방문 때는 국회연설에서 최치원의 '계원필경'과 허준의 '동의보감'을 예로 들어가며 양국의 우호관계를 강조해 우리를 놀라게 했다. 중국 소학교 어린이들이 다시 사서(대학 중용 논어 맹자)오경(시경 예경 역경 춘추)을 배우기 시작했다는 외신 보도다. 1912년 '소학교내 경전교육 폐지령'이 내려진지 89년 만의 일이다. 장쩌민 주석의 강력한 권고에 따라 교육부가 아이들에게 고전을 읽히도록 조치한 때문이라고 한다. 경제적으로 나날이 약진하고 있는 중국이 근대화의 적으로 스스로 배척했던 고전을 새삼스럽게 다시 가르치는 까닭이 궁금하다. 기독교가 유럽에서 쇠약해지기는 했어도 복음주의 정신은 그대로 남아있는 것처럼 유교는 사멸했지만 그 정신은 오늘날도 필요한 때문이 아닐까. 세계화의 기치를 내건채 표류하고 있는 우리 문화정책을 보면 고유문화만은 지켜가려는 중국 지도자의 느긋한 여유가 부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