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는 한성 도읍기(BC 18-AD 475년)에는 산성 (山城)을 만들지 않았다는 학계 통설을 뒤엎는 결정적인 증거가 나왔다. 단국대 매장문화재연구소(소장 박경식)는 지난 5월 한달 동안 경기 포천군 소홀읍 고모리산(古毛里山. 해발 386m)에 자리한 속칭 고모리산성에 대해 지표조사 결과,이 산성은 한성도읍기 백제가 축조해 사용했음이 확실히 드러났다고 6일 밝혔다. 지표조사와 더불어 실시한 성벽 규모 측량결과, 산꼭대기를 중심으로 계곡을 막아 축조한 이른바 포곡식(抱谷式) 산성인 고모리성은 성곽 전체 둘레 967m(바깥 성벽 240m 구간은 별도)에 남북 폭 342m, 동서 폭 192m로 드러났다. 또 문터(門址) 1곳이 육안으로 확인됐으며 성 안쪽에서는 40m x 10m 가량 되는대형 건물터를 비롯 7개 건물터가 드러났다. 성곽과 그 안쪽 일대에서는 토기 810개체와 수 점의 쇠화살촉과 쇠칼 등의 유물이 수습됐다. 토기는 백자 조각 1점을 제외하고는 나머지 전부가 굽다리잔(고배)이며 뚜껑,속깊은바리모양(심발형)토기, 긴계란모양(장란형)토기, 두 손잡이달린토기(양이부호), 독(옹)과 같은 이른바 백제계 토기 일색으로 확인됐다. 또 다른 독특한 대목은 아무리 지표조사라고 해도 우리나라 고대 성곽에서는 가장 흔하게 발견되는 기와가 단 1점도 확인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로 보아 고모리산성은 지금까지 확인된 백제 산성으로는 축조시기가 가장 올라가는 한성도읍기 백제 성곽임이 분명해졌다고 연구소는 말했다. 백제가 과연 이 성곽을 언제 축조해 어느 시점까지 사용했으며 그 성격은 무엇인지 따위에 대한 판단은 본격 발굴조사를 통해 내려지겠지만, 수습 백제 토기가 시기적으로 3세기 전반에서 5세기 초로 걸치고 있는 점을 연구소는 주목하고 있다. 박 소장은 "토기는 한성도읍기 중에서도 3세기 후반에서 4세기 초엽 유물이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다"면서 "이로 보아 백제는 고모리산성을 늦어도 3세기 후반에는만들어 사용하다가 5세기 초반쯤에 용도폐기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처음 만든 이래 적어도 1500년 이상의 장구한 시간을 고려한다 해도 더욱 수상한 점은 일부 구간에서는 자갈과 같은 돌을 이용한 가운데 대부분의 구간을 흙으로쌓은 고모리산성 현존 성벽이 높이 2m에 불과하다는 사실이다. 이와 관련, 박 소장은 "고모리산성은 성(城)이라기 보다는 「삼국사기」 백제본기 초기기록에 자주 보이다가 4세기 무렵 갑자기 사라지는 책(柵)이라는 일종의 나무목책 시설이 아닌가 추정해 볼 수도 있다"고 말했다. 최근 풍납토성 발굴 성과와 대비할 때 백제가 늦어도 3세기 후반 이전에는 포천에 고모리성과 같은 산성을 축조했다는 것은 지금까지 학계 통설과는 달리 백제는고이왕 이전에 이미 고대국가에 돌입했다는 방증자료로 평가된다. (서울=연합뉴스) 김태식기자 taeshik@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