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이 아메리카대륙의 잉카나 마야로부터 약탈한 금은보화를 본국으로 실어나르던 길목인 카리브해에는 '실버 뱅크'라는 곳이 있다. 1641년 침몰한 스페인의 컨셉시온호를 1687년 이곳 해저에서 발견한 미국 상선의 선장 핍스가 2만9천㎏의 은화와 은괴,11㎏의 금괴를 건져 올렸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그로부터 2백91년 뒤 미국의 보물탐사대장 웨버는 이 지역 해저를 20여년이나 뒤진 끝에 1978년 컨셉시온호를 다시 찾아내 은화와 은괴,금붙이와 중국 도자기 등 수천만달러어치가 넘는 엄청난 보물을 다시 건져 올렸다. 이 일은 '20세기 최고의 해저보물 발견'으로 알려져 있다. 한국의 신안해저보물선의 발견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사건중 하나로 꼽힌다. 76년부터 8년여에 걸친 발굴 끝에 원(元)나라의 각종 도자기가 대부분인 2만여점의 유물이 쏟아져 나왔다. 무게만 28t인 2백여종 8백만개의 동전은 화폐박물관을 꾸민다 해도 손색이 없다. 복원된 선체는 동양최고의 것으로 값조차 매길 수 없는 보물이다. 신안해저유물의 성공적 인양 탓인지 그무렵부터 보물선에 대한 국내의 관심도 높아지기 시작했다. 거제 군산 인근 해저의 일본군함과 화물선,동해의 러시아 수송선 돈스코이호 등 침몰선에 모두 엄청난 양의 금괴나 은괴가 실려 있었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탐사작업을 벌였지만 선체도 찾지 못한 데가 있는가 하면 아직 탐사중인 곳도 있다. 한 회사가 금년초 일본군에 의해 서해에서 1894년 시가 1천1백억원의 은을 싣고 격침된 중국군함 고승호(高升號)의 선체를 옹진 앞바다 해저에서 발견했다고 발표해 떠들썩하더니 이번에는 선체에서 발견했다는 은화 은괴 등을 공개해 관심을 끌고 있다. 하지만 발굴허가를 내줘야할 문화재청은 아직 그 배가 고승호인지 유물이 거기서 나온 것인지조차 확실치 않다는 신중한 입장이다. 얼마전처럼 발굴회사의 주가상승이나 부추겨 증권시장에 악영향을 주는 걸 막기 위한 신중함일게다. '실버 뱅크'가 서해에도 생긴다면 얼마나 좋으랴만 현재로선 문화재청의 판단에 맡길 밖에 뾰족한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