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딜이란 용어를 가장 먼저 쓴 사람은 서울대 조동성 교수로 알려져 있다. 그는 IMF 구제금융 신청 직후인 97년11월26일 '사업교환(빅딜)이 필요하다'는 요지의 기고문을 신문에 썼었다. 그 다음은 아마도 신국환 전 산업자원부 장관일 것이다. 신 장관이 박태준 자민련 총재(당시)에게 보고하고 박 총재가 김우중 회장에게 빅딜을 제안했던 것으로 취재팀은 보고 있다. 김 회장은 과연 언제쯤 빅딜을 심각하게 검토한 것일까. 놀랍게도 그 시점은 98년1월6일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IMF와의 치열했던 협상이 막 끝난, 아직은 혼돈의 시기. 이날 대우경제연구소는 '그룹간 빅딜(Big Deal)을 위한 기초검토자료'라는 2백페이지짜리 극비보고서를 만들어 김우중 회장에게 보고했다. 놀라운 속도전이었다. 준비해 오지 않았다면 만들기 어려운 보고서. 삼성은 대우보다 나흘 늦은 1월10일자 보고서(IMF 지원금융과 기업대응)에서 겨우 빅딜의 필요성을 몇자 언급하는 정도였다. 대우보고서 핵심은 대우그룹을 중심으로 산업계의 새판을 짜겠다는 것으로 압축된다. 지금은 정치인으로 진출한 이한구씨가 소장을 맡고있던 시절이었다. 가전 3사는 대우와 LG로 이원화하고 조선은 대우와 현대, 중공업은 대우와 삼성으로 각각 새판을 짜야 한다는 것이 골자였다. 대우의 기아자동차 인수 가능성은 비교적 낮은 것으로 봤고 건설업에 대해서는 특화전략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대우는 발전소 쓰레기소각장 상하수도처리시설로, 현대는 교량이나 댐, 삼성은 빌딩과 아파트 사업에서 경쟁력이 있다는 분석도 제시됐다. 나머지는 인수합병을 통해 대형화하거나 조기에 매각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 회장은 이 보고서를 기반으로 전향적인 산업구조조정을 주장하면서 김대중 대통령 당선자와 신정부의 호응을 얻었다. 물론 이 보고서가 제시했던 빅딜방안을 지금의 결과와 비교하면 달라진 것이 많다. 삼성전자의 가전부문이 부실하기 때문에 대우-LG의 이원화 체제로 가야한다는 주장이나 현대의 기아차 인수가능성을 아예 배제한 것이 그런 대목들이다. 반도체와 TFT-LCD 부문에서 LG가 아닌 현대쪽의 철수를 주장한 것은 현대-LG 반도체 빅딜 실패를 일찌감치 예견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항공우주법인의 단일화는 결과적으로 들어맞았다. 대우는 빅딜을 통해 손해보는 장사는 하지 않았다는게 정설이다. 부실사업이었던 철도차량과 항공산업을 각각 한국철도차량과 한국항공우주법인으로 넘기고 수익성이 좋은 HDS엔진(선박엔진)에는 현금 출자를 했다. 조일훈 기자 ji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