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지법 형사합의21부(재판장 장해창 부장판사)가 대우사건 피고인들에게 중형을 선고하고 천문학적 추징금을 선고한 것은 '관행'이라는 이름아래 자행돼온 분식회계, 대출사기 등 불법적 기업행위에 쐐기를 박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재판부가 특히 "김우중 회장의 지시에 어쩔 수 없이 따랐다"는 피고인들의 해명에 대해 "총수를 견제하고 소액주주들을 보호해야 할 전문경영인의 의무를 저버렸다"며 오히려 더 무거운 책임을 지운 것은 `황제경영'으로 대표되는 재계의 기존 경영풍토에 비춰 커다란 파장이 예상된다. '대우사태'를 바라보는 재판부의 시각은 "대우그룹 경영진의 무모하고 부정한차입경영이 우리 국민경제에 엄청난 피해를 입히고 사회를 큰 혼란에 빠트렸다"는판결문 대목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금융기관들은 수십억원의 대출금을 날렸거나 날릴 위기에 놓이고 투자자들은 헐값에 회사채를 넘길 수밖에 없게 됐으며 회사채 발행을 보증한 보증회사마저 부실해져 막대한 공적자금을 투입하게 만들었다는 것이 재판부의 시각이다. 재판부는 "관행처럼 이뤄진 분식회계와 대출사기 등은 범죄행위"이므로 "우리사회가 단호하고 엄정하게 대처해야 한다"며 중형을 택했다. 또 ㈜대우 경영진이 회사자금을 해외로 빼돌리거나 해외에서 불법차입한 26조여원에 대해 "비록 돈을 숨기기 위한 목적이 아니었다고 해도 과정이 불법적이라면 유죄"라고 단정, 모조리 추징키로 한 것은 `투명경영'에 대한 강조로 해석된다. 재판부는 나아가 "무소불위의 총수에게 맞설 수 없었다"며 일종의 '머슴론'을편 피고인들의 주장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전문경영인이라면 기업의 투명성을 높이고 내실위주의 경영을 해야 할텐데 오히려 방만한 경영을 유지하고 외형을 부풀려 진실한 재산상태를 속였다는 지적이다. 재판부는 "최고경영진인 피고인들이 별다른 죄의식없이 장기간 이런 범행에 가담한 것은 그룹 총수의 눈에 벗어나지 않고 자리를 보전하기 위해 국민과 국가경제에 막대한 손실을 끼칠 수 있다는 그릇된 생각에서 비롯된만큼 비난받아 마땅하다"고 따끔하게 충고했다. 부도덕한 총수의 전횡에 브레이크를 거는 것도 전문경영인의 책임이라는 점을분명히 한 것이다. 다만 전문경영인의 이런 문제점이 국내 다른 재벌에서도 일반적으로 나타나는현상이라는 점에서 '권한만 있고 책임은 없는 총수', '권한도 책임도 없는 전문경영인' 모두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이 법원의 입장이다. (서울=연합뉴스) 박세용기자 s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