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12일의 노동계 연대 파업을 앞두고 정부의 고민이 계속되고 있다. 재계와 노동계 사이에서 어느쪽 손을 들어줘야 할지 확고한 방침을 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언제까지 상황을 방치할 수만도 없는 형국이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채 시간만 보내고 있다. 우선 재계는 이번 노동계의 파업이 우리 경제를 되돌아올 수 없는 길로 내몰 수도 있다며 연일 정부의 "결단"을 재촉하고 있다. 수출이 감소세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등 대외경제여건이 악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노동계의 파업을 그대로 놔둘 경우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는게 재계의 입장이다. 더구나 외자유치와 대우차 처리 문제 등 미묘한 협상이 진행중인 터에 불법 파업과 화염병투척 등 과격 시위가 벌어지는 것은 국가 전체의 신뢰도를 더욱 떨어뜨릴 수 있을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한국경총의 고위 관계자는 4일 "일부 노조 간부들이 법 질서를 공공연히 어기는데도 대우차 노조원 강제폭행사건의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정부는 무기력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며 "불법적이고 초법적인 행위에 대해 정부가 일벌백계식으로 단호하게 대처해야만 노사분규 확산을 막을수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에 대해 정부는 "재계측 주장은 수긍이 가지만 그렇다고 당장 재계의 요구를 수용할 수도 없다"는 입장이다. 무엇보다 강경자세로 선회할 경우 지금까지 노사간 자율대화를 강조한 일관된 원칙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게 문제다. 자칫 잘못 대처하면 노동계의 투쟁 열기만 북돋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정부는 문제의 심각성을 감안,이날 오전 행정자치부 주관으로 사회관계장관회의를 가졌다. 당초 안건은 효성 울산 공장과 여천 NCC공장의 노사분규와 민노총 집회 관련 대응 방안이었다. 이날 회의에서도 합법적인 노동쟁의는 적극 보호하되 불법적인 노동쟁의에 대해서는 강력 대응한다는 교과서적인 이야기가 오고간 것으로 알려졌다. 파업사업장의 노사협상을 좀더 지켜보자는 것이 결론이었다. 이처럼 정부가 소극적인 자세를 유지하는 것은 재계 요청대로 강경진압에 나선다해도 상황을 개선하기는 커녕 더 악화시킬수도 있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컨페더레이션컵 대회가 진행중인 시점에서 외신에 내비칠 공권력 투입 장면을 우려하고 있다는 것도 다른 이유다. 이와 관련,김호진 노동부 장관은 "노사간 자율대화로 분규를 해결토록 최선을 다하고 있다"며 "무리한 공권력 개입은 보다 큰 문제의 시발점이 될수 있다"고 밝혔다. 그는 지난 1일과 2일 2개 사업장을 방문,관계기관 회의를 갖고 노사관계자들을 만나는 등 중재를 시도했다. 김원배 노동부 기획관리실장도 "지난 1일 효성 울산공장의 임금협상 중재로 의견접근을 이뤄냈으나 해고 등의 문제는 관여할 부분이 아니다"고 밝혔다. 그는 "앞으로 노사간 자율협상을 지켜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결국 정부로서는 노동계의 파업이 일정 수준을 넘어 비난 여론이 형성됐을 때 칼을 빼겠다는 것으로 관측된다. 말하자면 여론을 등에 업은 상태에서 공권력을 투입함으로써 대우차 진압사태 때와 같은 "실(실)인심"을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물론 재계는 "그때가 되면 늦는다"는 입장이다. 한편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은 "재계가 정권 말기에 무리한 요구를 하고 있다"고 반발하고 있다. 노동계는 효성 울산공장의 파업사태가 어떻게 결말을 짓고 민주노총의 연대파업이 얼마나 세를 얻느냐에 따라 올 노사관계의 향방이 좌우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김도경 기자 infofe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