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양 < KAIST 테크노 경영대학원 정책학 교수 > 경제와 관련해 '펀더멘털(fundamentals)'이라는 단어는 IMF 위기 직전 정부 등이 "우리 경제의 펀더멘털은 튼튼하다"는 말을 되풀이하는 과정에서 익숙해진 용어다. 그러나 환란을 겪은 뒤 펀더멘털이라는 용어는 그다지 신뢰받지 못하는 용어가 된 듯하다. 그래서인지 영어 쓰기를 좋아하는 요즘에도 펀더멘털 대신 '거시경제지표'가 주로 사용되고 있다. 이 펀더멘털이라는 용어가 최근 다시 오르내리고 있다. 지난 연초 우리 경제의 잠재성장률이 크게 낮아졌다는 한 민간연구기관의 발표와 함께 우리 경제의 펀더멘털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었고,얼마전 열렸던 청와대 경제장관회의에선 투자와 수출의 부진으로 인한 경제 펀더멘털의 약화를 막기 위해 설비투자 세액공제 기간의 연장과 수출촉진단 파견 등의 대책이 논의됐다고 한다. 우리 경제의 펀더멘털은 과연 무엇인가. 우리 경제는 기본적으로 지속적인 투자와 그 생산물의 수출을 통해 성장하게 되어 있다. 따라서 고수익 투자기회를 얼마나 창출할 수 있느냐와 산업 및 수출경쟁력을 얼마나 높일 수 있느냐가 곧 우리 경제의 지속적인 성장과 안정적인 고용 창출의 관건이다. 이는 결국 고수익 투자기회와 산업 및 수출경쟁력 모두의 원천인 '기술력'이 우리 경제의 펀더멘털임을 의미하는 것이다. 고수익 투자는 기본적으로 새로운 기술기회나 기존 사업에 대한 중장기적인 수요확대가 있어야 한다. 이러한 전제요건 없이 단순히 설비투자비용을 경감시켜주는 세액공제나 저리의 자금 지원 등은 일시적 투자수요 유발을 통한 경기하락 진정효과를 볼 수 있으나,결국 저수익 설비가 쌓이는 일종의 과잉투자 현상을 야기할 우려가 크다. 기술과 시장수요가 선도하지 않는 설비투자는 본질적으로 저수익·과잉투자가 되어 충분한 수익을 내지 못한 채 해당 기업과 경제의 짐이 될 우려가 높다. 수출도 마찬가지다. 지금의 수출둔화는 크게 미국 등 주요 시장의 수요 둔화라는 외부여건적 요인과 우리 산업의 상대적인 경쟁력 부족이라는 두가지 요인의 결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수출수요 둔화라는 외부여건을 뛰어넘을 수 있는 우리 산업의 경쟁력 강화가 곧 수출의 펀더멘털이며,이를 강화하기 위한 보다 근본적이고 장기적이며 꾸준한 접근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고는 모두가 대증적이고 제한적인 대책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는 언제부터인가 경제의 펀더멘털에 대한 관심과 노력이 크게 약화되고 있다. '굴뚝산업'이라는 말에서 보듯이 금융이나 서비스분야에 비해 제조 및 기술부문이 인기를 잃어가고 있다. 기술혁신형 중소기업군 형성을 기대했던 벤처붐도 닷컴 열풍에 휩싸이면서 '묻지마 투자'와 각종 주가조작 사건들로 얼룩진 가운데 정작 산업의 기술저변 확충에는 많이 부족한 느낌이다. 경제정책의 펀더멘털도 부실해지기는 마찬가지다. 정부조직 개편과 금융 중심의 구조조정 과정에서 오히려 금융 관련 부처의 위상은 더욱 강화된 반면,산업 및 기술정책에 대한 관심과 관련 부처의 위상은 상대적으로 약화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빈번한 장관 교체로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 일례로 실물과 기술을 담당하는 산업자원부의 장관은 지난 3년간 이미 네번이나 바뀌었으니 1년에도 훨씬 못미치는 기간, 그저 멋만 내다 물러난 모양이 아닌가 싶다. '산업이나 기술정책은 아무에게나 맡겨놔도 된다'는 자조섞인 말이 나돈지 이미 오래다. 이제는 원칙에 충실한 정책을 통해 시장의 부적격기업 선별 및 퇴출기능을 확립하는데 주력하면서 경제의 펀더멘털 강화에 나서야 할 때다. 이를 위해 연구개발투자에 대한 과감한 유인 제공,기업의 기술개발 유도,연구기관의 효율성 제고,기술교육의 일류화 등을 체계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이와 함께 앞선 기술력에 기초한 산업경쟁력이 그 무엇에도 우선하는 경제의 펀더멘털이라는 인식하에 관련 부처의 위상과 기능을 강화하고 기술입국을 위해 국가역량을 결집시킬 수 있는 강력한 지도력이 있어야 한다. drcylee@kgsm.kaist.ac.kr ............................................................... ◇이 글의 내용은 한경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