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상당수 초등학교가 촌지와 선물 수수를 막고자 스승의 날 휴교했다.

유엔에서는 한국의 공교육 파탄을 걱정하며 경제발전 수준에 걸맞게 교육제도를 강화하라고 권고하고 있다.

대학생은 공부를 안한다.

하루 1시간도 공부를 안한다는 학생이 51.1%(고려대 교육문제연구소 조사),주당 평균 학습시간이 2시간이 안되는 학생이 58%(한국대학교육협의회 발표)라니 무슨 말을 더 하랴.

학생만 탓할 수 없는 것인지 김대중 대통령은 "실력없는 교수는 퇴출돼야 한다"면서 10년,20년전에 만든 노트를 갖고 강의하는 교수가 어떻게 교육을 발전시킬 수 있겠는가를 묻고 있다.

50년대도 아닌 오늘날 낡은 노트로 강의하는 교수가 있는지 알 수 없으나 그런 시각으로는 대학개혁을 이룰 수가 없다.

정부는 교육개혁 한답시고 교원을 개혁대상으로 취급,사기를 꺾으면서 정년만 단축시켰다.

교원 수급상황을 점검하고 연금기금 사정도 따졌어야 했는데,칼로 무 자르듯 일을 저질렀다.

교원수가 모자라 퇴직교사를 임시직으로 다시 채용했다.

늙은 교사 한사람 월급 몫으로 젊은 교사 몇사람 쓸 수 있다고 기막힌 돈 계산을 했지만,늘어난 퇴직자 때문에 연금기금만 축내게 됐다.

교사를 그런 식으로 내몰면서 교육개혁을 외쳤다.

대학교수는 발언권이 강해서 정년단축에 손을 못댔을 것이라는 교사들의 불평에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는가.

붕어빵에 붕어가 없는 건 당연하다.

죽은 자는 제삿날 현장에 없듯,스승의 날에 스승이 없는 건 이미 스승은 죽었기 때문이다.

스승의 날을 아예 없애자.휴교하는 것 보다 백배 낫다.

지식경제시대는 왔다.

두뇌를 얼마나 잘 쓰느냐로 경쟁력이 결판난다.

그동안 공장 짓고 도로건설 하는 일이 너무 급해 물적투자에 주력할 수밖에 없었다.

학교나 교육기관에의 투자는 뒷전이었다.

우수한 인력은 많다고 착각했고,그래서 인적투자는 소홀했다.

그런데 이제 부족한 고급인력이 경제발전에 가장 큰 걸림돌이 되고 있다.

세칭 ''이해찬 1세대''라는 고3생들의 학력이 크게 떨어졌다면서 전 교육부장관을 매도한다.

어찌 한사람에게 책임을 돌릴 일인가.

그들이 대학에 간다고 밤잠 설치며 시험치는 공부만 했으니 우선 쉬고 싶을 것이다.

인간은 기계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간과 정성을 들여 머리에 물도 들인다.

하지만 뇌에 물들이는(독서하고 사색하는) 노력을 하는 학생들도 많아졌으면 하는 기대를 저버릴 수는 없다.

생명공학의 중요성을 이야기하고 위대한 사상을 논하면서 그 바탕이 되는 기초학문은 홀대되고 있다.

창조적 아이디어가 샘솟을 바탕이 잠식되고 있는 것이다.

교육이민을 떠나거나,온갖 어려움을 무릅쓰고 해외유학을 보내는 학부모가 늘어나도,교육부는 ''그 수가 얼마 안된다''며 태연하다.

대학이 발전하려면 교육부는 대학에서 손을 떼야 한다.

교육부가 우려할 일을 저지를 대학이 생길지 모르나,그런 대학은 시장에서 냉엄한 평가를 받게 돼 있다.

초·중·고교는 지방자치단체에 맡겨라.잘못되는 경우도 있겠지만 획일적 통제나 간섭 때문에 모두 망하는 교육의 황폐화는 막을 수 있을 것이고,잘하는 곳을 따라가는 효과는 금방 나타날 것이다.

대학에는 재정확보를 위한 자율권도 학생선발 자율권도 없다.

국고보조도 제대로 안 해주고 등록금 결정도 제대로 못하게 한다.

해마다 등록금책정 때문에 학생들은 투쟁을 한다.

그런 판에 대학의 국제경쟁력이 왜 떨어지느냐는 질책이다.

교육의 질적 향상을 위해 사용할 수 있는 공적재원이 한정돼 있다면,기여입학제도를 긍정적으로 검토해야 옳다.

이래서 안되고 저래서 안된다고 하면서 여기까지 온 것이 우리의 교육정책이었다.

결국 도토리 키재기식 평등주의는 교육의 하향평준화,교육의 저질화만 초래했다.

공부하지 않으면 배겨나기 어려운 환경을 조성해 대학다운 대학을 만들어갈 책임이 대학과 교수에게 있다는 건 아무리 강조해도 좋다.

그렇다고 해서 대학과 교수를 닦달하는 것으로 교육개혁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투자없이 학문과 대학발전은 결코 이루어지지 않는다.

yoodk99@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