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로 할렘 브룬트란트 < WHO 사무총장 >

건강은 사회발전의 필수요소일 뿐만 아니라 지속적인 경제개발을 달성하도록 도와주는 수단이다.

건강은 부유한 국가만이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대상이 아니다.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도 반드시 투자해야 한다.

하지만 이같은 고비용의 투자를 가난한 나라에 요구할 수는 없는 일이다.

선진국과 다국적 기업은 낙후된 국가의 질병부담을 덜기 위해 적극 나서야 한다.

또 그렇게 하는 것이 자국의 경제발전이나 건강 환경을 위해서도 바람직하다는 점을 깨달아야 한다.

새로운 세기를 맞이한 지금, 두가지 중요한 힘이 현실세계를 떠받치고 있다.

한가지는 정보통신 및 생명공학 분야의 혁명이며 다른 하나는 세계화의 진전이다.

이 두가지 힘은 긍정적인 잠재력을 지니고 있는 동시에 상당한 위험성도 내포하고 있다.

수많은 비평가들이 지적하듯 세계화가 곧 불평등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불평등이 심화된다는 것은 세계화가 실패했다는 징조일 뿐이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세계화를 통해 긍정적인 변화를 이끌어 내는 것이다.

세계화는 평등하고 유기적인 지구촌사회를 만들기 위해 꼭 필요하다.

남북격차가 심화되는 세계, 소수의 특정국가만이 첨단과학의 과실을 맛볼 수 있는 세계, 이런 세계는 지극히 불안할 수밖에 없다.

과거에는 다른 대륙에서 일어나는 절박한 상황도 한낱 구경거리에 불과했지만 세계화된 시대에는 ''강 건너 불 구경''이란 있을 수 없다.

현대사회에서 박테리아와 바이러스는 돈의 흐름처럼 급속도로 전파된다.

세계화가 진전됨에 따라 인류건강을 지켜주는 성역은 없어진 셈이다.

따라서 국내와 해외의 건강문제를 분리해서 생각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수백만명의 사람들이 매일 국경을 넘나들고 있다.

전체로 따지면 매년 인류의 10%에 해당하는 수치다.

세계화는 비단 전염병 뿐만 아니라 생활습관이나 음식문화에도 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심장병이나 당뇨 암 등의 발병확률을 높이기도 한다.

현대과학 역시 세계화의 일환이다.

유전자 조작을 거친 농산물은 고유가치나 안전에 대한 검증없이 세계 각지에서 판매되고 있다.

에이즈 환자들은 매스컴을 통해 그들의 생명을 연장시켜줄 의약품이 있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다.

하지만 소수 특권층만이 이같은 약품을 구입할 수 있을 뿐이다.

필수 의약품은 일상 생활용품과는 다르다.

기본적인 건강을 누릴 권리는 인간의 고유권한에 해당한다.

각국 정부와 국제기구는 이같은 기본권이 실현될 수 있도록 적절한 환경을 조성할 의무가 있다.

필수 의약품과 백신을 원하는 모든 사람들이 구입할 수 있어야 한다.

물론 시간이 걸리겠지만 더이상 지체해선 안된다.

인간의 고통을 줄이고 전세계적으로 공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과학기술이 반드시 필요하다.

가난한 나라의 사람들도 쉽게 얻을 수 있는 백신과 의약품 처방전 등은 과학의 혁신이 없이는 불가능하다.

하지만 오늘날에도 유전자 연구를 포함한 대부분의 생명공학 성과들이 선진국에서 가시화되고 있다.

선진국과 후진국간 격차는 더욱 확대되고 있다.

선진국과 다국적 기업은 이같은 사실을 분명히 인식하고 후진국의 질병퇴치를 돕기 위한 자금조성 등에 적극 나서야 한다.

건강은 인간의 기본적인 권리이자 신성한 의무다.

21세기를 맞이한 지금, 우리는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가장 좋은 기회를 맞고 있다.

정리=조재길 기자 road@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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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그로 할렘 브룬트란트 세계보건기구(WHO) 사무총장이 최근 런던경제대에서 강의한 내용을 정리한 것입니다.